추가 56. 하스모니안 (Hasmonean) - 맛다디아의 아들 시몬⑩이 세운 유대인 마지막 독립 왕조
① 의미 - ‘맛다디아( = 마타디아)의 아들 시몬⑩과 그의 후손들이 세운 -
※ 유대인의 - 마지막 독립 왕조’(BC 142 ~ BC 63)
★참고 - 267. 맛다디아
1167. 유대인①~④

② 다른 이름 -
❶ 하스몬 왕조
❷ ‘마카베오 가문’
③ 통치 기간 - 시몬⑩ 마카베오부터
힐카누스 2세와
아리스토불루스 2세까지 - 약 80년간.
④ 셀레우코스(= 셀류쿠스) 제국에 대항해 - 독립을 쟁취.(BC 142년경)
ⅰ) 마카비 혁명으로 시작됨 - 마카비(Maccabee) 가문이 이끔.
ⅱ) 셀레우코스 제국으로부터 - 독립한 후 -
⇒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움.
★참고 - 535. 셀류쿠스
⑤ 정복 및 헬레니즘
ⅰ) 요한 힐카누스 시대에 - 영토를 크게 확장.
※ 모압, 암몬, 에돔( = 이두매) 정복
⇒ 모두 유대교로 - 강제 개종시킴.
※ 한두 세대 만에 - 종교적으로 동화시켰음.
ⅱ) 헬레니즘 문화와 융합함.
★참고 - 1309. 헬라 제국
⑥ 멸망 - 후기 내부 분열과 부패로 인해 - 로마의 폼페이우스에게 멸망.(BC 63년)
ⅰ) 왕위 계승 분쟁으로 - 약해진 틈을 타 -
⇒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해 멸망
※ 힐카누스 2세 vs 아리스토불루스 2세
ⅱ) 왕조 후기에는 - 세속화되어 -
⇒ 바리새파, 사두개파 등 - 유대 종교 분파가 형성되는 배경이 됨.
(1) 정치적, 문화적 배경
① 알렉산더 3세의 헬라 제국 분열 이후에 -
※ 수리아(셀레쿠스 왕가)와 애굽(프톨레미 왕가) 사이에 - 갈등이 생김.
⇒ 셀류쿠스 왕 안티오쿠스 4세(에피파네스)가 - 개입 하게 됨.
② 당시 유대는 - 정치적, 문화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.
❶ 정치적 위협 - 수리아로부터
❷ 문화적 위협 - 헬레니즘
⇒ 유대 상류층은 - 헬레니즘 문화에 동화되는 현상이 나타남.
(2) 영적 배경 - 셀류쿠스 왕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박해
※ 당시 수리아(시리아) 통치자
★참고 - 857. 안티오쿠스 4세
① 유대의 제사장직을 - 경매에 부쳐 -
⇒ 최고의 입찰자인 - 메넬라우스에 팜.
② 종교적인 박해를 가함.(BC 168년)
❶ 곳곳에 - 신전을 세움
❷ 성전에 - 제우스 신상등 - 우상들을 세우고
⇒ 제사를 강요함.
cf) 하나님이나 다른 신을 섬기면 - 처형함.
★참고 - 524. 성전①~⑩
❸ 돼지 피를 - 성전에 뿌리기도 하며 돼지로 - 제사를 지내게도 함.
cf) 돼지는 - 유대인들이 부정하다 여기는 것임.
❹ 많은 유대인(특히 하시딤 - 언약의 사람들)들이 고난을 당함.(마카비1서 1:60 이하, 마카비1서 2:29 이하)
⇒ 훗날 - 많은 하시딤들이 - 맛다디아 가문과 연합하게 됨.
③ 수리아(시리아)의 통치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-
※ 애굽(프톨레미 왕가)와 전쟁하여 - 승리한 후 -
⇒ 유대에 대한 압박이 - 더욱 심해짐(BC 171년)
(3) 아버지 맛다디아( = 마타디아)의 - 항쟁과 영적 대각성에 함께함(BC 168년)
①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신하들과 - 배교한 유대인들을 - 죽임.
※ 시리아의 헬라 세력에 저항하여 -
⇒ 예루살렘에서 30Km 떨어진 모데인에서 - 항쟁을 선포함.
ⅰ) 때 - 안티오쿠스 4세 신하들이 모데인에 왔다.(BC 166)
ⅱ) 그들은 - 제사장 맛다디아가 신상들에게 제사를 드려 -
⇒ 유대 백성에게 좋은 본을 보여줄 것을 바랬다.
ⅲ) 맛다디아가 - 이를 거절함.
⇒ 그러나 안티오쿠스의 보복이 두려웠던 - 많은 유대인들이 -
※ 앞으로 나와 - 우상들에 제사함.
★참고 - 267. 맛다디아
ⅳ) 격노한 맛다디아는 - 제단에 다가가 -
⇒ 그 배교한 - 유대인과
안티오쿠스 4세 신하들을 - 죽였다.
ⅴ) 맛다디아는 - 그의 5명의 아들들과
율법을 준수하는 자들과 함께 -
※ 이방 제단을 부숴버린 후 -
⇒ 고원으로 피신함.
② 시리아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승리.
ⅰ) 정통유대주의를 추종하는 하시딤들이 - 맛다디아와 연합함.
⇒ 헬레니즘을 옹호하는유대인들을 대항하여 - 게릴라전을 폈다.
ⅱ) 정통파 유대인 하시딤들 - 안식일에는 싸우려하지 않았기에 -
⇒ 커다란 위험에 빠지기도 함.
cf) 안식일에 - 방어조차도 하지 않았음.
⇒ 대량 학살을 당하기도 함.
★참고 - 853. 안식일
ⅲ) 맛다디아가 - 새로운 방침을 새움.
※ 안식일에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다고 - 허용함.
③ 율법을 바탕으로 - 철저한 유대교 신앙을 확립.
(4) 형제 마카비(유다)가 - 아버지 맛다디아의 지휘권을 물려받음 - 마카비 혁명
① 맛다디아(마타디아)의 자손들 중 정권 잡은 자들 순서
cf) 하스모니안 가문 - 유대민족을 이끌고 시리아의 침략에 저항한 영적 지도자들.(BC 2세기 중 ~ 말기)
❶ 아들들 - ⒈ 요한⑤ ⒉ 시몬⑩ ⒊ 마카비(유다) ⒋ 엘리아살② ⒌ 요나단⑥
❷ 마카비 혁명 순서 - 아버지 맛다디아의 혁명을 이어받음.
※ 마카비(유다) → 요나단⑥ → 시몬⑩ 순으로 정권을 잡음.
② 마카비 혁명 - BC 164년 기슬래월 25일
❶ 예루살렘을 빼앗은 후
❷ 성전을 정화함 - 성전의 제우스 상을 없앰.
⇒ 이 날을 - 수전절(=하누카)로 지켰다.
★참고 - 258. 마카비
(5) 시몬⑩ 3세가 됨 - 하스모니안( = 하시몬) 왕조를 열음(BC 142 ~ BC 63년)
① 대제사장 맛다디아(마타디아, 마타디아스)의 - 2째 아들
ⅰ) 아버지 - 맛다디아 - 대제사장(BC 167~166년)
ⅱ) 형제 - ❶ 요한⑤ ❷ 시몬⑩ ❸ 유다 ❹ 마카비 ❺ 엘리아살② ❻ 요나단⑥
ⅲ) 아들 - 요한 힐카누스 1세(BC 135~BC 104)
ⅳ) 손자들 -
❶ 아리스토불루스 1세
❷ 안티고누스 1세
❸ 알렉산더 얀네우스

② 대제사장직과 군사령관을 - 겸직함.(BC 142년)
cf) 마카비( = 마카베오) 전쟁에서 - 셀레우코스 왕조의 데메트리오스 2세에게
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받은
마카베오군의 지도자 시몬⑩은 -
❶ 자신을 - 유대의 지도자이자
총사령관 겸 대사제장으로 칭함.
❷ 독립 왕조를 세움.
③ 하지만 하스몬 왕조에 대한 - 비판 세력이 있었음.
ⅰ) 이유 -
❶ 마카비( = 마카베오) 가문은 - 유대에서 정통으로 여기는 사독① 계열 제사장 가문이 아님.
※ 유대인들의 일반적 상식 - “사독①의 자손이 대제사장이 되어야 한다.”
★참고 - 473. 사독①
❷ 왕이 - 대사제까지 겸임함.
※ 이 또한 - 유대교의 율법에 어긋남.
ⅱ) 그러나 시몬⑩은 - 이런 비판들을 무시하고 -
※ 왕권을 강화하는데 - 집중함.
④ 트리포가 속임수로 - 요나단⑥을 살려 주겠다고 - 인질을 요구했을 때 -
⇒ 시몬⑩ 3세는 - 동생 요나단⑥의 2명의 아들을 - 인질로 보냈음.
⇒ 그러나 트리포는 - 본래 계획대로 - 요나단⑥을 죽였음(BC 142년)
★참고 - 1094. 요나단⑥
⑤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- 처음으로 독립하게 됨.
ⅰ) 셀류쿠스의 이전 왕 데메트리오스 2세와 - 동맹을 맺음.
※ 이유 - 새로 셀류쿠스의 왕이 된 트리폰을 없애기 위해.
ⅱ) 결과 - 데메트리오스 2세로부터 -
⇒ 약속 받은 - 세금면제, 자치권, 왕권을 얻게 됨.
⑥ 하스몬 왕조 시대 - 맛다디아의 2째 아들 시몬⑩ 3세부터 시작 (BC 142 ~ BC 63년)
cf) 내부의 음모로 인해 - 로마의 개입을 받게 됨.
로마제국에 정복되기까지 약 100년 동안 - 마카비 가문의 유대 통치가 이루어짐.
❶ 시몬⑩ 3세(BC 142 ~ BC143)
❷ 요한 힐카누스 1세(BC 135~BC 104)
❸ 아리스토불루스 1세(BC 104~BC 103)
❹ 알렉산더 얀네우스(BC 103 ~ BC 76)
❺ 살로메 알렉산드라(BC 76 ~ BC 67)
❻ 요한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루스 2세(BC 67 ~ BC 63)




⑦ 시몬⑩가 죽임 당함 - 아부보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에게.(BC 135년)
cf) 이유 - 프톨레마이오스가 - 시몬⑩의 권력을 탐했다.
※ 하스몬 왕조의 대사제직과 통치권을 빼앗으려 했음.
ⅰ) 시몬⑩은 - 부인과 2명의 아들 마타티아스와 유다를 데리고 -
⇒ 여리고( = 예리코)를 방문함.
ⅱ) 여리고( = 예리코)에는 - 사위 프톨레마이오스가 - 사령관으로 있었다.
⇒ 도쿠스 요새에 - 술자리를 마련하고
- 장인을 대접하던 프톨레마이오스가 -
※ 갑자기 - 칼로 시몬⑩을 살해함.
- 시몬⑩의 아내와 2명의 아들도 - 그 자리에서 살해됨.
ⅲ) 결과 - 프톨레미의 계획이 실패함.
※ 이유 - 시몬⑩의 다른 아들인 요한 히르카누스의 반격으로 - 실패.
(6) 요한 힐카누스( = 히르카누스) 1세
❶ 친헬라 정책
★참고 - 1309. 헬라 제국
❷ 정복 전쟁 - 영토 확장
※ 사마리아와 이두메 - 정복
⇒ 유대교로 - 개종시킴.
① 아버지 시몬⑩의 통치 시기에 - 게셀의 군사령관으로 있었음.
② 프톨레마이오스가 - 요한 히르카누스까지 죽이기 위해
가자라에 군대를 보냈으나 -
⇒ 이미 소식을 듣고 힐카누스는 - 피해있다가 -
※ 자신을 죽이러 오는 자들을 - 잡아 처형했다.
⇒ 이후 힐카누스 1세는 - 프톨레마이오스까지 물리치고 -
※ 예루살렘으로 돌아옴.
③ 요한 힐카누스 1세가 왕이 됨 - 31년의 통치.
※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 가운데 - ❶ 유대의 통치자와
❷ 대제사장이 됨.(BC 134년)
④ 요한 힐카누스 1세의 목표 - 유대교 세계 제국
❶ 전 세계를 정복해서 - 모든 사람을 유대교인으로 만드는
유대교 세계제국이었다.
❷ 알렉산더① 대왕과 같은 - 대제국을 세우고 -
⇒ 대제국의 종교를 - 유대교로 국교로 삼고 싶어함.
⇒ 열정적으로 - 정복전쟁에 임함.
ⅰ) 왕위에 오르고 3년 동안 - 남쪽 에돔(이두매)를 정복하여 -
⇒ 과거 유대왕국의 남단 지역인 브엘세바까지 다스림.
★참고 - 1184. 이두매
ⅱ) 이두매인들을 죽이기보다는 -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-
⇒ 유대교로 개종하게 함.
★참고 - 1165. 유대교

⑤ 셀류코스 안티오코스 7세의 공격을 받음
ⅰ) 하스몬 왕조는 - 단지 셀레우코스 왕조가 자치권을 허락한 가문이었을 뿐 -
※ 종주권은 -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있었다.
ⅱ) 안티오코스 7세는 - 하스몬 왕조에게 준 자치권을 거두고 -
⇒ 다시 팔레스타인을 직접 통치하려 - 예루살렘을 포위함.
ⅲ) 안티오코스 7세에게 맞설 힘이 없던 요한 힐카누스는 - 돈으로 해결하기 위해 -
⇒ 다윗 왕의 능을 도굴해서 - 은 3000달란트를 꺼내
안티오코스 7세에게 바치고 -
※ 협상을 제안했다.
ⅳ) 협상 결과 -
❶ 요한 힐카누스 1세가 - 새로 정복한 이두매 지역을 - 포기하는 대신
❷ 유대의 자치권은 - 인정하기로 해 -
⇒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.
⑥ 안티오코스 7세가 -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전사(BC 129년)
⇒ 셀레우코스 왕조의 힘이 - 약해짐.
⇒ 요한 힐카누스 1세는 - 다시 거침없이 정복 전쟁에 나섬.
⑦ 유대의 접경지역을 정복 후 - 사마리아로 쳐들어가 정복함(BC 128년)
ⅰ) 사마리아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던 - 그리심( = 게리짐) 산의 신전을 -
※ 파괴함.
ⅱ) 이두매 남부지역까지 - 정복
⇒ 하스몬 왕조는 - 시몬⑩ 때보다 -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됨.
⑧ 요한 힐카누스 1세의 치세에 - 하스몬 왕조는 - 대대적인 전성기를 누림.
⑨ 율법주의자들과 - 종교적인 갈등이 나타남.
ⅰ) 율법주의자들인 하시딤들은 -
※ 요한 힐카누스 1세에게 - 대사제장직을 내놓고
⇒ 율법에 맞는 대사제장을 - 세워야 함을 주장함.
★참고 - 178. 대제사장①②
ⅱ) 요한 힐카누스 1세가 대사제장이 될 수 없는 근거.
※ 힐카누스의 어머니가 - 안티오코스 4세 때 셀레우코스군에 끌려
이방인에게 더럽혀졌음.
⇒ 더럽혀진 여인의 아들은 - 대사제장이 될 수 없다는 것.
★참고 - 1186. 이방인
ⅲ) 요한 힐카누스 1세는 격분하여 - 하시딤들을 모조리 내쳤고 -
⇒ 하시딤 대신 기용된 자들이 - 바로 현실주의자들인 사두개파들.
⇒ 이로 인해 - 하시몬 왕조는 점차 기울어짐.
⑩ 죽음(BC 104년)
(7) 아리스토불로스 1세
① 잔인하고 포악했음.
② 유대교 전통보다는 - 헬레니즘을 더 좋아해 -
⇒ 백성들의 지탄을 받음.
③ 그러나 아리스토불로스 1세는 -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-
⇒ ❶ 후계자로 지명될 뻔했던 - 자신의 어머니를 감옥에 둠.
❷ 동생 안티고누스를 죽임.
❸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- 동생 알렉산드로스 야나이도 감옥에 가둠.
④ 그러나 아리스토불로스 1세는 - 재위 1년 만에 병으로 사망.
⑤ 왕위는 - 그의 아내인 살로메 알렉산드라에게로 넘어가게 됨.
cf) 아들이 없이 죽었다.
(8) 살로메 알렉산드라
① 아리스토불로스 1세의 부인
② 왕이 되자 - 가장 먼저 감옥에 있던 알렉산드로스 야나이를 석방시킴.
③ 14살 연하인 알렉산드로스 야나이와 - 결혼.
④ 알렉산드로스 야나이를 - 왕으로 세움.
(9) 알렉산드로스 야나이
※ ❶ 율법을 무시하고
독재를 일삼아 - 백성들에게 비난을 받음.
❷ 27년간 통치

① 갈릴리( = 갈릴래아)와 요르단강 동편 중부 등을 - 정복.
② 하스몬 왕조의 왕들은 - 왕으로 칭하고 왕관을 쓰는 등 -
⇒ 명실상부한 독립 왕조임을 나타냄.
③ 하시딤 즉 바리새파들과 - 심한 갈등.
ⅰ) 요한 힐카누스 1세에게 축출되었던 하시딤들이 - 바리새파( = 바리사이파)가 됨.
ⅱ) 바리새인들이 - 야나이에게 -
※ 대사제장직을 내놓을 것을 - 요구함.
ⅲ) 초막절 제사때 - 바리새인들이 주동이 되어 -
※ 제사를 지내러 대신전으로 올라가는 야나이에게 - 열매를 던지면서
시위를 벌임.
⇒ 분노한 야나이는 - 자신에게 반발한 바리사이파 6,000명을 - 학살함.
ⅳ) 이 외에 - 바리새인들이 개최한 연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-
※ 800명을 - 기둥에 못박아 처형함.
ⅴ) 8,000명의 바리새인들이 - 예루살렘에서 도피하여 -
⇒ 유대광야로 나감.
⇒ 이들이 나중에 - 엣세네파가 됨.
④ 죽음 - 일사병으로.
⇒ 부인 살로메 알렉산드라가 - 다시 통치자가 됨.
(10) 살로메 알렉산드라
※ ❶ 1번째 남편 - 아리스토불로스 1세
❷ 2번째 남편 - 알렉산드로스 야나이
① 남편 야나이와는 달리 - 율법에 충실하고자 노력해 -
⇒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음.
② 살로메 알렉산드라의 정책
❶ 추방된 바리새인들과 - 화해.
⇒ 그들을 중용함.
❷ 사두개파( = 사두카이파)들을 추방시킴.
⇒ 바리새인들의 세력이 강해짐.
③ 장남인 요한 힐카누스( = 히르카노스) 2세를 - 대사제장으로 임명함.
cf) 이유 - 9년간 알렉산드라가 통치하는 동안 -
※ ❶ 알렉산드라는 - 여성이 대사제장이 될 수 없기 때문.
❷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.
④ 2째 아들인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- 반란.
ⅰ) 알렉산드라가 늙어지며 - 2명의 아들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됨.
ⅱ) 이때 - 2째 아들인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-
※ 아버지 야나이 시절 정권에 참여했던 - 사두개인들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켜 -
⇒ 왕이 되려 함.
ⅲ) 이 소식을 들은 힐카누스( = 히르카누스) 2세는 -
※ 바리새파들을 규합하여 - 맞섬.
ⅳ) 살로메 알렉산드라는 -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아내와 자식들을 붙잡아 -
⇒ 안토니아 요새에 가둠.
ⅴ) 형 힐카누스 2세와 - 협상
Ⓐ 가족이 인질로 잡혀 행동하기가 어렵던 -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-
⇒ 형인 히르카누스 2세와 - 협상을 벌임.
Ⓑ 합의 - ❶ 힐카누스 2세는 - 대사제장직을 유지하고
❷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- 유대의 왕이 되는 걸로.
(11) 아리스토불로스 2세 - 하스몬 왕조의 붕괴가 시작됨.
cf) 이두매 총독 안티파터 1세의 영향

①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- 왕이 됨
② 안티파터 1세( = 안티파트로스 1세)의 계략
cf) 안티파터 1세 - 이두매(Edom) 출신
- 헤롯 대왕( = 대헤롯 = 헤로데 대왕)의 아버지
※ 유대 지역에서 - 로마 제국의 세력을 등에 업고 -
⇒ 실질적인 통치력을 행사함.
❶ 뛰어난 정치력으로 - 로마의 폼페이우스, 카시우스 등과 관계를 맺어
⇒ 유대 행정장관이 됨.
❷ 이두매인으로서 - 유대교로 개종한 뒤 -
⇒ 유대 지역을 지배하는 - 헤롯( = 헤로데) 왕조를 염.
★참고 - 860. 안티파터 1세
ⅰ) 안티파터 1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와는 - 사이가 좋지 않음.
ⅱ)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왕이 되자 -
※ 안티파터 1세는 -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해 -
⇒ 아리스토불로스 2세를 - 제거하려 함.
Ⓐ 힐카누스 2세에게 -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3세에게 도움을 청해 -
⇒ 아리스토불로스 2세를 밀어내고 - 왕위를 차지하자고 부추김.
Ⓑ 아레타스 3세도 호응하여 - 나바테아군 50,000을 이끌고 -
※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옴.
ⅲ)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- 폼페이우스의 부장인 스카우루스에게도
은 300달란트를 주고 - 도움을 청함.
⇒ 스카우루스가 - 병력을 이끌고 -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옴.
ⅳ) 아레타스 3세는 - 이 소식을 듣고 -
※ 철수해 돌아가버림.
ⅴ) 이 일로 로마의 힘을 실감한 - 2명의 형제 힐카누스 2세와
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-
Ⓐ 앞다투어 폼페이우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- ❶ 쟁투를 벌이고
❷ 로마에게 아부함.
⇒ 두 형제의 정통성은- 갈수록 추락해갔다.
Ⓑ 결국 폼페이우스는 - 이 두 형제를 중재하겠다면서 -
⇒ 직접 팔레스타인 정복에 나섬.
③ 폼페이우스는 - 팔레스타인의 각 도시들을 점령하고,
예루살렘을 포위함.
⇒ 하스몬 왕조의 붕괴가 - 시작됨.
ⅰ)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- 여전히 싸움.
ⅱ) 결국 폼페이우스는 - ❶ 예루살렘을 - 함락시켰고
❷ 12,000명을 - 학살함(BC 63년)
ⅲ) 폼페이우스의 유대 정치
❶ 하스몬 왕조가 정복한 - 이두매, 사마리아, 갈릴리( = 갈릴래아),
데가폴리스( = 데카폴리스) 등을 -
※ 모두 - 독립시킴.
❷ 유대와 예루살렘은 - 시리아 총독 아래 행정장관이 통치하게 함.
❸ 아리스토불로스 2세와 그의 가족들은 - 포로로 사로잡혀 로마로 호송됨.
❹ 힐카누스 2세는 - 폼페이우스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됨.
(12) 하스몬 왕조의 멸망
① 안티파터 1세의 정치적 계략 - 줄리어스 시저( = 카이사르)의 신뢰를 얻음.
⇒ 유대 총독이 됨(BC 47)
★참고 - 1229. 줄리어스 시저
ⅰ) 안티파테 1세는 - 폼페이우스 편에서 권력을 확대해나가다가 -
⇒ 폼페이우스가 죽고
⇒ 카이사르가 집권하게 되자 -
⇒ 재빨리 카이사르 편에 섬.
❶ 줄리어스 시저에게 - 막대한 뇌물을 갖다바치고
❷ 이집트에서 곤경에 처한 줄리어스 시저에게 - 병력을 보내 - 그를 도움.
⇒ 카이사르에게 - 신뢰를 얻음.
ⅱ) 힐카누스 2세도 -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을 설득해 -
⇒ 줄리어스 시저에게 - 안티파터 1세를 유대 통치자로 삼아줄 것을 호소함.
⇒ 결국 안티파터 1세는 - 유대 총독이 됨(BC 47)
② 로마에 끌려간 -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아들인 안티고누스는 -
※ 이 소식을 듣고 - 자신이 유대 통치자의 정통성이 있음을
카이사르에게 주장.
⇒ 줄리어스 시저는 - 이를 외면함.
③ 안티파터 1세( = 안티파트로스)의 정치 - 유대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.
❶ 히르카누스 2세를 - 대사제장으로 임명
❷ 예루살렘의 성벽을 - 재건하는 등
❸ 2명의 아들 중 -
⒈ 장남 파사엘은 - 유대와 이두매의 행정장관으로.
⒉차남 헤로데를 - 갈릴래아의 행정장관으로 임명.
④ 줄리어스 시저 ( = 카이사르)가 -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함.
⑤ 안티파터 1세도 - 독살당함.
⇒ 파사엘과 대헤롯( = 헤로데) 형제가 - 서로 권력 분쟁을 벌임.
⇒ 대헤롯은 - 로마 새로운 권력자 안토니우스에게 재빨리 붙어서 -
※ 권력을 얻어내는 데 - 성공함.
⑥ 하스모니안 가문의 안티고노스 2세가 - 왕위에 오름.
⇒ 하스몬 왕조의 복권을 시도함.
ⅰ) 안토니우스가 이집트로 가자 -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-
⇒ 하스몬 왕조의 복권을 노렸다.
ⅱ) 반카이사르 파의 - 파르티아의 시리아 침공이 일어남.(BC 40년)
⇒ 안티고누스 2세는 - 사두개파들을 규합하고
- 파르티아의 후원을 받아
⇒ 예루살렘에서 반란을 일으켜 - 한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
⇒ 안티고노스 2세가 - 왕위에 오름.
ⅲ) 안티고노스 2세의 정치
❶ 힐카누스 2세는 - 다시 대제사장과 왕이 되지 못하게 -
⇒ 귀가 잘린 후 - 파르티아로 끌려감.
❷ 파사엘은 - 파르티아군에게 붙잡혀 죽음.
❸ 대헤롯( = 헤로데)는 - 겨우 마사다로 피신해 - 목숨을 구함.
❹ 동전 발행 - 자신을 왕으로 새김.
⑦ 안토니우스가 - 파르티아군을 격파하고 - 헤로데를 구해줌.
⇒ 안티고노스의 하스몬 왕조 부활 시도는 - 이루지 못함.
⑧ 하스모니안 왕조 - 완전 멸망(BC 37년)
❶ 안티고노스 2세는 - 붙잡혀 처형되고
❷ 안토니우스는 - 대헤롯( = 헤로데)를 - 유대의 왕으로 임명함.
⇒ 하스몬 왕조는 - 완전히 멸망했다.
⑨ 대헤롯은 - 하스몬 왕조를 지지했고
- 하스몬가의 딸인 마리암네 1세와 결혼하여 -
⇒ 유대인 가문과 깊은 관계를 맺음.
cf) 마리암네 1세 - 대제사장 힐카누스 2세의 외손녀
★참고 - 1297. 헤롯 대왕
❶ 이유 -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.
cf) 헤롯 1세 – 에돔 사람(유대인이 아님)
❷ 유대인들이 무시하는 에돔(이두매) 사람인데 - 유대를 다스려야하는 -
※ 정치적 콤플랙스를 - 없애기 위해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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