926. 에디오피아(Ethiopia)① - 성경 속 구스③( = 누비아 = 수단 북부)의 역사
① 의미 - ‘그을린 얼굴’(렘 13:23)
cf)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.(렘 13:23)
※ 렘 13:23 - 구스③인이 - 그의 피부를
표범이 - 그의 반점을 - 변하게 할 수 있느냐?
※ 할 수 있을진대 -
⇒ 악에 익숙한 너희도 -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
② 다른 이름 - 구스③
cf) 같은 지역 - 다른이름으로 기록됨.
❶ 구약성경 - 구스③
❷ 신약성경 - 에디오피아(행 8:27)
③ 위치 - 애굽( = 이집트) 남부지역.
※ 나일강의 제 1폭포에서 애굽 남부로 뻗은 나라.
cf) 성경에서 - ‘에디오피아(Ethiopia)’는 -
❶ 현재의 에디오피아는 - 아니다.
❷ 누비아 또는 북부 수단과 에디오피아 북부를 포함함.
④ 구스① 의 자손들 - 북아프리카에 사는 함의 아들 구스①의 자손들을 말함.(창 10:6~8, 대상 1:8~10)
※ 창 10:6 - 함의 아들은 -
※ 구스①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
창 10:7 - 구스①의 아들은 -
※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
라아마의 아들은 - 스바③와 드단이며
창 10:8 - 구스①가 또 - 니므롯을 낳았으니 -
※ 그는 - 세상에 첫 용사라
⑤ 특산품 - 황옥.(욥 28:19)
※ 욥 28:19 - 구스③의 황옥으로도 - 비교할 수 없고
순금으로도 - 그 값을 헤아리지 못하리라
(1) 에디오피아( = 구스③)와 이집트와의 관계
cf) 에디오피아(구스③)는 - 이집트(애굽)을 다스린 적이 있었다.
1) 제 24 왕조(BC 732 ~ BC720) - 리비아 왕조
❶ 하이집트 통일
❷ 나일강 삼각주의 서부를 점령하던 - 리비아의 리부(Libu) 부족이 -
※ 사이스에 자리를 잡고 - 파라오를 자칭 함.
❸ 리비아 왕조가 - 애굽을 다스렸던 시대에 함께 공존했던
제 25왕조 구스③ 왕조인 초대 왕 피예에게 -
⇒ 조공을 바쳤다.
① 테프나크트 Tefnakht (BC732년 ~ BC 725년) - 애굽 왕 ‘소’(?)
cf) 이집트 왕 소(So)는 누구인가에 대한 - 2가지 의견
⒈ 델타 왕조 제 24왕조의 테프나크트 1세(Tefnakte Ⅰ BC 732~BC 725년)
⒉ 누비아 왕조 제 22왕조의 오소로콘 4세(Osorokon IV BC 730~BC 713년)
※ 제22왕조가 - 지리적으로 이스라엘(팔레스틴)과 인접함
시삭 때부터 친분이 있었으므로 -
⇒ 소(So)를 - 오소로콘 4세라고 보는 추세임.
ⅰ) 제 24왕조 - 초대 왕
ⅱ) 네코(느고)1세의 - 아버지
ⅲ) 제 25왕조 피예와 - 전쟁(BC 734년)
Ⓐ 중부이집트를 정복하고자 북진하다 - 피예와 싸움
Ⓑ 테프나크트가 - 대패함.
Ⓒ 피예에게 - 조공을 줌.
ⅳ) 블레셋 가사( = 가자) 왕을 도움
Ⓐ 가사( = 가자) 왕 하눈이 - 망명 왔다가 돌아감.
※ 앗수르의 디글랏블레셋이 가사를 침략하자 - 이집트로 망명함.
Ⓑ 테프나크트는 - 25왕조 피예와 전투를 앞두고 있어서 -
⇒ 하눈은 - 다시 블레셋 가사로 돌아감.
ⅴ) 북이스라엘 호세아①를 돕고 - 호세아①로부터 조공을 받음(왕하 17:4)
Ⓐ 앗수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집트에 구원을 요청함.(왕하 17:4)
Ⓑ 호세아①가 테프나크트에게 조공을 바치게 됨.(왕하 17:4)
② 바켄레네프 Bakenrenef (BC725년 ~ BC 720년) - 복코리스 Bocchoris
ⅰ) 누비아( = 구스③) 왕 샤바코에게 - 죽임당함(BC 720)
ⅱ) 이집트 군대장관 레우는- 앗수르의 사르곤③ 2세에 - 대패함.
2) 제 25 왕조 (BC 747~656) - 구스③(Cush) 왕조 - 앗수르(앗시리아) 공격기
※ 구스③ = 에티오피오 = 수단 = 누비아
❶ 제 24왕조(리비아 왕조) 와 25왕조(구스③ 왕조)는 - 같은 시기에 병립함.
❷ 앗수르( = 아시리아)의 공격 받음 - 디글랏빌레셀 3세( = 티글랏빌레셀 3세)
살만에셀 5세, 사르곤③ 2세
❸ 이집트 세력이 점점 약해져감 - ‘상한 갈대’가 됨.(사 36:6)
※ 사 36:6 - 보라!.
네가 - 애굽을 믿는도다
※ 그것은 -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
사람이 - 그것을 의지하면 - 손이 찔리리니
※ 애굽 왕 바로는 -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
① 구스③의 침략(BC 747)
ⅰ) 구스③(쿠시) 왕국에서 유래한 - 누비아( = 구스③ = 에티오피아 = 수단)인들이 -
※ 이집트를 침략.
ⅱ) 원인 - 끊임없는 분쟁
cf) 22왕조 말기로 넘어가며 - 타니스( = 소안)와 부바스티스의 군주들과
테베를 지배하고 있던 친척들 사이에 -
※ 분쟁이 - 끊이지 않았었음.
⇒ 테베의 왕족들이 - 무정부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-
※ 구스③의 왕을 - 끌어들임.
ⅲ) 결과 - 구스③인들이 왕좌를 차지하고 - 25왕조를 세워 -
⇒ BC 656년까지 다스림.
② 앗수르( = 아시리아)의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침략
★참고 - 204. 디글랏빌레셀 3세
ⅰ) 타하르카(디르하가)의 통치와
그의 후계자 탄타 마니의 통치는 - 앗수르와 끊임없이 충돌.
ⅱ) 이집트는 3번에 걸쳐 - 앗수르( = 아시리아)의 공격을 받음(BC 671∼BC 664년)
⇒ 테베는 - 2번 점령됨.
ⅲ) 이집트 테베( = 노)와 멤피스( = 놉②)를 약탈(BC 664 년)
③ 피예(Piye = 피안키 Piankhi)(BC752년 ~ BC 721년)
ⅰ) 구스③ 왕조의 지방 호족 - 카흐타의 아들.
ⅱ) 피예가 북으로 올라와 - 이집트를 정복하고 25왕조를 염.
Ⓐ 피예가 통치한 구스③의 왕국은 - 작았지만 백성의 단결력이 강했다.
Ⓑ 군대는 잘 훈련되었고 막강한 조직력을 가졌다.
ⅲ) 이집트의 파라오를 존경하는 - 사제이자 왕.
Ⓐ 테베의 신인 아몬-레를 숭배하는 - 독실한 신자였음.
Ⓑ 이집트인들보다 더 정통적으로 - 고대 이집트 신앙을 고수했다.
Ⓒ 피예가 - 질서회복과 정통신앙의 복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
상부이집트로 왔을 때 -
⇒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음.
※ 오히려 상부이집트 수인 테베에서 -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.
ⅳ) 제 24왕조 테프나크트( 리비아 왕조)와 - 25왕조 피예(구스 왕조)의 전투.
Ⓐ 중부이집트를 정복하고자 북진하는 테프나크트와 - 피예의 싸움.
Ⓑ 테프나크트가 - 대패함.
⇒ 피예에게 - 조공을 바침.
ⅴ) 하부이집트 멤피스와 소군주들도 - 정복해감.
ⅵ) 상하 이집트를 통일후 - 수도인 나파타로 돌아감.
ⅶ) 당시 국제 상황
Ⓐ 앗수르 왕( = 아시리아 왕) 살만에셀 5세가 –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포위함.
ⓐ 이유 - 호세아①가 - 앗수르 살만에셀 5세를 배반함
cf) 살만에셀 5세 때 - 호세아①로부터 이미 조공을 받았었음
ⓑ 호세아①가 - 이집트 파라오 소(So) 테크나프트에게 사자들을 보냄.
⇒ 화가 난 살만에셀 5세는 - 3년 동안 사마리아를 포위함.
cf) 소(So) 확실치 않음 - 오소르콘 4세(?) - 22왕조
테프나프트(?) - 24왕조
Ⓑ 앗수르( = 아시리아) 사르곤③ 2세 -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킴.(BC 721년)
Ⓒ 이집트 24왕조 테프나크트는 - 사르곤③ 2세에게 -
⇒ 이집트의 변경 지역과 12 마리의 말을 내어줌.
④ 샤바카(Shabaka = 샤바코)(BC 721년 ~ BC 707년) - 이집트 재통일(BC 712년)
ⅰ) 이집트 재통일(BC 712년)
ⅱ) 피예(피안키)의 동생
ⅲ) 이집트 문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임 - 특히 이집트 신앙에 깊이 빠짐.
※ 이집트 신전 안의 경전을 - 돌에 새김(석경을 고안함)
⑤ 셰비쿠(Shebitku = 샤바트카)(BC 707년 ~ BC 690년)
ⅰ) 피예( = 피안키)의 아들
ⅱ) 지중해 해변 국가들의 서부 반란을 - 선동함.
⇒ 사르곤③ 2세가 죽은 후 - 앗시리아가 동시다발적인 반란에 휩싸인 틈을 이용.
(BC 705년)
ⅲ) 남유다 히스기야에게 - 원조군을 보냄(왕하 19:9~10, 사 37:9)
※ 동생 디르하가를 - 남유다 히스기야의 원정군으로 파견.
⇒ 앗수르 산헤립에게 패함.
⑥ 디르하가(= 타하르카 Taharqa)(BC 690년 ~ BC 664년) - 이집트 구스③ 왕조 마지막 왕
ⅰ) 히스기야시대의 애굽 왕 타하르카(Taharqa)(왕하 18:21, 사 36:6)
ⅱ) 피이(피안키)의 아들
ⅲ) 애굽을 지배한 구스③(에디오피아)의 왕조이면서 - 동시에 애굽의 제 25대 왕조.
(BC 690년 ~ BC 664년)
❶ 구스③ 왕조의 - 마지막 왕.
❷ 흑인 파라오의 - 마지막 파라오
ⅳ) 유다 왕 히스기야와 앗수르 왕 산헤립의 통치 기간 중 - 애굽을 통치한 구스③의 왕.
ⅴ) 히스기야가 앗수르 산헤립에게 대항하는 것을 - 원조했으나 결국 패함.
(왕하 19:9~10, 사 37:9)
★참고 - 497. 산헤립
※ 왕하 19:9 - 앗수르 왕은 - 구스③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
함을 듣고 -
⇒ 다시 히스기야에게 -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
※ 산헤립 - “너희는 -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
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-
※ “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- “예루살렘을 - 앗수르 왕의 손에
넘기지 아니하겠다.”
하는 말에 - 속지 말라!.”(왕하 19:10)
ⅱ) 이사야는 - ❶ 애굽이 - 잔인한 군주의 손에 넘겨질 것이며,
❷ 포악한 왕이 - 애굽 사람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.(사 19:4)
cf) 이 예언은 - 아시리아 문서에 의해 확증됨.
※ 사 19:4 - 내가 - 애굽인을 -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-
⇒ 포학한 왕이 - 그들을 다스리리라
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
cf) 포악한 왕 - 산헤드립, 에살핫돈
ⅲ) 에살핫돈이 혼혈정책을 폄 -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과 앗수르인들(스 4:2)
※ 스 4:2 -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-
※ 우리가 -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
ⅳ) 앗수르( = 아시리아)인들과 끊임없이 충돌함 - 그러나 모두 패배함.
❶ 산헤립( = 센나케립)에게 - 패배
Ⓐ 산헤립은 - 디르하가(티르하카)를 대항해 승리하긴 했다.
※ 그러나 이 전쟁으로 - 많은 손실을 입은 채 - 앗수르로 돌아감.
(왕하 19:35~36, 사 37:36~37)
Ⓑ 산헤립의 비문에 기록됨.
※ “짐이 직접 . . . 에티오피아 왕의 병거 모는 자들을 사로잡았다.”
cf) 에디오피아 왕 = 구스③ 왕 = 구스③ 왕조
❷ 에살핫돈( = 에사르하돈)에게 - 패배
※ 산헤립의 막내아들 에살핫돈이 왕이 됨.
Ⓐ 이집트 군대의 최초 전투는 - 에살핫돈 재위 7년 때.
⇒ 이집트는 심각한 패배함.
⇒ 3년 뒤에 - 나일 삼각주에서 15일 동안 3차례의 전투
⇒ 멤피스는 - 항복하고,
디르하가(타하르가)는 - 구스③로 도망.(쫓겨남)
Ⓑ 에살핫돈은 - “이집트의 왕들의 왕”이란 칭호를 갖게 됨.
⇒ 산헤립의 아들 에살핫돈이 - 이집트 정복을 뽐냄.
※ “짐은 - 그 왕, 타하르카에게 활을 쏘아 - 5 차례나 부상을 입혔고,
그의 나라 전체를 - 다스렸다.”
Ⓒ 나중에 다시 권력을 잡아 - 에살핫돈을 자극하게 됨.
Ⓓ 앗시리아 왕 에살핫돈의 죽음 - 반란을 진압하러 원정 가던 중 하란②에서.
Ⓔ 에살핫돈이 후계자 세움 -
❶ 죽기 전에 - 자기의 아들 아슈르바니팔을 황태자로 선언.
❷ 다른 아들 샤마시슘우킨을 - 바빌론의 왕으로 임명 함.
❸ 앗수르바니팔에게 복종하다가 - 반역함 – 패배(BC 667년)
cf) 아슈르바니팔( = 아슈르바니팔 = 오스납발)
※ 산헤립(센나케리브)의 손자,
에살핫돈(스 4:2)의 아들.
Ⓐ 구스③(쿠시)의 왕이자 애굽의 왕인 디르하가가 - 이집트에서 반란을 일으킴.
Ⓑ 앗수르바니팔은 - 앗수르 군대를 보내어 - 멤피스( = 놉②)에서 곧 진압함.
Ⓒ 디르하가 - 구스③( = 쿠시)로 도망감.
Ⓓ 반란을 도왔던 이집트 구스③ 왕조 신하들은 - 모두 니느웨( = 니네베)로 붙잡아 감.
Ⓔ 파라오 느고 1세(네코 1세)를 - 이집트의 왕으로 세움.
⇒ 앗수르가 - 애굽을 지배함.
cf) 정복지에 그 지역 출신 왕을 세운다는 방침.
⑦ 탄타마니(Tantamani)(BC 664년 ~ BC 656년)
※ 수도 테베가 - 앗수르( = 아시리아)의 앗수르바니팔에 의해 정복됨
⇒ 구스③인에 의한 구스③ 25왕조 - 멸망
ⅰ) 디르하가( = 타하르카)의 조카.
ⅱ) 구스③에서 - 다시 이집트를 침범해 - 테베를 점령.(BC 664년)
ⅲ) 앗수르( = 아시리아) 아슈르바니팔( = 오스납발)의 공격
Ⓐ 아슈르바니팔은 -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시 이집트를 공격
⇒ 수도 테베가 - 잇수르바니팔에 의해 다시 정복됨
Ⓑ 대리 왕 세움
❶ 프삼티크 1세 - 이집트 사이스의 대리 왕으로 세워짐
⒈ 바로 느고 1세의 아들
⒉ 반란을 진압하던 중 - 대리 왕 바로 느고 1세가 죽었기 때문.
❷ 느고 2세( = 네코 2세) - 이집트 아트리비스의 왕으로 세워짐.
★참고 - 141. 느고 2세
ⅳ) 구스③( = 에디오피아)로 - 다시 쫓겨남.
※ 본래 수도 메로에로 쫓겨남.
ⅴ) 구스③( = 에디오피아) 나파타라는 곳에 - 다시 왕국을 세움.
ⅵ) 이집트 구스 왕조( = 에디오피아 왕조) - 완전 멸망.
⇒ 구스③( = 누비아, 에티오피아, 수단)인의 -
※ 이집트 지배 끝남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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