535. 셀류쿠스(Seleucus)① - 셀류쿠스 왕조, 셀레우코스 왕조
①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( = 셀류코스 1세 = 셀류커스 1세)
②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중 한 명.
★참고 - 78. 그리스①~③
③ 알렉산더 대왕 죽음 후 -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함.
⇒ 셀류쿠스 왕조가 시작됨.
cf) 셀류쿠스 = 셀레우코스 = 셀레우쿠스
★참고 - 272. 메소포타미아
ⅰ) 알렉산더 죽음 후 - 그리스 제국이 그의 장군들에 의해 -
⇒ 7명의 장군들이 다스렸다가 - 이후 크게 3분 되어 다스림.
❶ 안티고누스의 후계자들 - 마케도니아
★참고 - 247. 마게도냐
❷ 셀류쿠스의 후계자들 -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(시리아의 근동 서부 일대)
※ 셀류쿠스 왕조를 건설.
❸ 프톨레미의 후계자들 - 이집트( = 애굽)
ⅲ) 이후 - 4개로 다시 크게 나뉨.
❶ 이들 국가 중 - 셀류쿠스 왕조가 가장 강력했음.
❷ 알렉산더① 대왕의 계승국 중 - 가장 영토가 넓었다.
④ 유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왕국 -
❶ 이집트의 프톨레미(Ptolemy) 왕국과
❷ 시리아의 셀류쿠스(Seleucus) 왕국
※ 유대는 - 이 두 정국의 틈바구니 소용돌이에서 - 힘겹게 살아남아야 했음.
⒈ BC 3세기에 – 이집트( = 애굽) 프톨레미가
⒉ BC세기 말에는 - 수리아( = 시리아) 셀류쿠스 왕조가
유대지역을 다스리게 됨.
(1) 셀류코스 왕조( = 셀레우코스 왕조)
① 셀류코스 왕조는 - 30명의 왕이 있었다.(BC 323년 ~ BC 63년)
② 수도 - 수리아 안디옥①( = 시리아 안티오키아)
ⅰ) 건설자 - 셀레우코스( = 셀류코스 니카토르) 장군.
cf) 알렉산더 대왕의 - 부하 장군이었음.
⇒ 알렉산더 사후 -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 왕이 됨.
※ 셀류코스 1세 니카토르
ⅱ) 비잔틴, 십자군 시대에도 - 중요한 지정학적 도시임.
ⅲ) 기독교 이방인 전도의 1번째 - 베이스캠프가 있었다.
cf) 수리아 안디옥① 교회
★참고 - 61. 교회
ⅳ) 잦은 지진과 전쟁으로 - 현재는 폐허가 됨.
③ 헬레니즘 문화가 왕성하게 부흥됨.
ⅰ) 이 통치기 동안 지배계층은 -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움.
⇒ 피지배계층의 문화를 무시하고 - 헬라문화를 강요하고 핍박함.
ⅱ) 결국 피지배 민족의 독립운동이 - 빈번하게 일어남.
⇒ 점점 힘이 약해짐
⇒ 훗날 - 로마에게 멸망.
★참고 - 245. 로마제국①②
(2) 시리아 전쟁(1차 ~ 6차)
cf) 이집트( = 애굽) 프톨리미 왕조와 6차 전쟁함(BC 274 ~ BC 168년)
❶ 제1차 시리아 전쟁(BC 274 ~ BC 271) -
※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 vs 프톨레미 2세
❷ 제2차 시리아 전쟁(BC 260 ~ BC 253) - 무승부(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우세)
※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vs 프톨레미 2세
❸ 제3차 시리아 전쟁(BC 246 ~ BC 241) - 이집트 프톨레미 3세 승리
※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 vs 프톨레미 3세
❹ 제4차 시리아 전쟁(BC 219 ~ BC 217) - 무승부(셀류쿠스 우세)
※ 안티오코스 3세 vs 프톨레미 4세
❺ 제5차 시리아 전쟁(BC 202 ~ BC 195) - 안티오코스 3세 승리
※ 안티오코스 3세 vs 프톨레미 5세
❻ 제6차 시리아 전쟁(BC 170 ~ BC 168)
① 제1차 시리아 전쟁(BC 274 ~ BC 271) - 무승부
※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 vs 프톨레미 1세
cf) 프톨레미 = 프톨레마이오스
ⅰ) 안티오코스 1세는 - 프톨레미 2세가 지배하고 있는
시리아 해안과 아나톨리아 남부를 점령했다
ⅱ) 이후 - 프톨레미 2세는 - 안티오코스 1세가 빼앗은 영토를 모두 되찾음.
⇒ 오히려 카리아와 시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함.
cf) 프톨레 2세가 시리아에 가 있는 동안 -
※ 키레나이카의 - 마가스 왕이 독립을 선포함.
⇒ 안티오코스 1세와 프톨레미 2세가 - 휴전함.
② 제2차 시리아 전쟁(BC 260 ~ BC 253) - 무승부(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우세)
※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vs 프톨레미 2세
ⅰ)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- 안티오코스 2세에게 함대를 지원함.
※ 이유 - 에게 해에서 프톨레미 2세의 해군력을 배제하려.
ⅱ) 안티오코스 2세는 - 밀레도( = 밀레투스)와 에베소( = 에페소스)를 점령함.
cf) 이때 - 마케도니아 해군은 - 코스 해전에서
이집트 함대를 전멸시킴.(BC 261년)
ⅲ) 해군력을 상실한 이집트 프톨레미 2세는 -
⇒ 밤빌리아( = 팜필리아)와 이오니아 지방을 잃게 됨.
Ⓐ 그러자 프톨레미 2세는 -
※ 고린도( = 코린토스) 와 칼키스를 선동하여 -
⇒ 마케도니아에 대항해 -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함.
Ⓑ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- 그리스로 철수.
ⅳ) 안티오코스 2세가 - 프톨레미 2세와 동맹을 맺음(BC 253년)
⇒ 프톨레미 2세의 딸 베레니케와 – 결혼함.
※ 부인 라오디케와 이혼 후
③ 제3차 시리아 전쟁(BC 246 ~ BC 241) - 이집트 프톨레미 3세 승리
※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 vs 프톨레미 3세
ⅰ)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- 39세에 갑자기 죽음(BC 246년)
⇒ 그러자 안티오코스 2세와 함께 에베소( = 에페소스)에 있었던
라오디케가 -
※ 안디옥①(안티오키아) 에 있었던 - 베레니케와 안티오코스를 죽임.
ⅱ)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가 - 즉위함.(BC 246년)
ⅲ) 이집트에서는 프톨레미 2세도 - 같은 해에 죽음.(BC 246년)
⇒ 프톨레미 3세 에우에르게테스가 즉위.
Ⓐ 프톨레미 3세가 - 여동생 베레니케의 요청을 받음.
※ “안디옥①( = 안티오키아)로 와서 - 안티오코스를 왕위에 앉히게 도와달라!.”
Ⓑ 프톨레미 3세는 - 여동생인 베레니케가 라오디케 1세에게
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함.
ⅳ) 프톨레미 3세가 -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에게 - 전쟁을 선포함.
cf) 셀레우코스 2세 -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와 라오디케 1세의 장남
Ⓐ 프톨레미 3세는 -
❶ 스파르타 출신의 용병대장 크산티포스를 고용.
⇒ 셀레우코스 2세 공격.
❷ 셀류쿠스 수도인 안디옥①( = 안티오키아)를 함락시킴.
❸ 바빌론( = 바벨론)까지 진격.
❹ 안드로스 해전에서 - 키클라데스 제도를 빼앗김.
cf) 안드로스 해전 -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이끄는
마케도니아 해군과 싸움.(BC.246)
Ⓑ 갑자기 어머니 라오디케가 - 동생 안티오코스 히에락스를 앞세워 -
※ 아나톨리아에서 독립을 선언함.
ⅴ) 결국 - 강화 조약을 맺음.(BC 241년)
❶ 프톨레미 3세는 - 수도 안티오키아의 외항인 셀레우키아
시리아 북부 지역을 차지.
⇒ 전성기를 맞게 됨.
❷ 셀레우코스 2세는 - 이집트와의 종전 이후 -
※ 어머니 라오디케 1세와
동생 안티오코스 히에락스를 상대로 - 내전을 벌이게 됨.
④ 제4차 시리아 전쟁(BC 219 ~ BC 217) - 무승부(셀류코스 우세)
※ 안티오코스 3세 vs 프톨레미 4세
ⅰ) 앙카라 전투 - 형제들 간의 전쟁(BC 235년)
※ 셀레우코스 2세 vs 안티오코스 히에락스
⇒ 안티오코스 히에락스 승리.
※ 형이 다스리던 - 아나톨리아 점령.
ⅱ) 안티오코스 히에락스 - 하르파소스 전투에서 -
※ 페르가몬( = 버가모)의 왕 아탈로스 1세에게 - 패배함.
⇒ 도주한 트라키아에서 - 살해됨.(BC 229년)
★참고 - 386. 버가모
ⅲ) 셀레우코스 2세 사망(BC 225년)
⇒ 장남 알렉산드로스 즉위
※ 셀레우코스 3세 케라우노스로 - 이름 개명
ⅳ) 셀레우코스 3세가 - 버가모( = 페르가몬) 의 아탈로스 1세를 정벌하기 위해
아나톨리아로 출격함.
⇒ 암살당함(BC 223년)
⇒ 동생 안티오코스 3세가 즉위
ⅴ) 안티오코스 3세 - 동쪽의 메대( = 메디아) 와 바사( = 페르시아)의 반란을 진압.
★참고 - 270. 메대
346. 바사①②
Ⓐ 간신 헤르미아스를 죽임.
Ⓑ 이집트 프톨레미 4세에게 - 전쟁을 선포.(4차 시리아 전투)
⇒ 3차 시리아 전쟁에서 빼앗긴 시리아를 되찾음.
cf)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는 -
❶ 관리들의 부정부패와
상호간의 불신으로 -
⇒ 혼란스러운 상황.
❷ 간신 소시비오스가 - 권력을 휘두름.
⇒ 프톨레미 4세의 왕권이 약함.
Ⓒ 그러나 라피아 전투에서 - 이집트군에게 패함.
⇒ 프톨레미 4세와 강화조약을 맺음.
⑤ 제5차 시리아 전쟁(BC 202 ~ BC 195) - 안티오코스 3세 승리
※ 안티오코스 3세 vs 프톨레미 5세
cf) 파네아스 전투(가이사랴 빌립보의 옛 이름)
= 바니아스 전투
= 파니온 전투
★참고 - 12. 가이사랴 빌립보( = 빌립보 가이사랴)
ⅰ) 안티오코스 3세 -
Ⓐ 소아시아에 남아있었던 반역자 아카이오스를 죽임.
Ⓑ 동방 원정( = 아나바시스)을 실시함.
cf) 아나바시스(anabasis) - 해안가에서 육지 내륙부로의 여행
Ⓒ 이집트 프톨레미 5세를 공격.
cf) 이집트는 - 프톨레미 4세 사후 - 다시 내분에 빠진 상태임.
Ⓓ 안티고노스 왕조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와 - 동맹을 맺음.
⇒ 이집트 이외의 영토를 정복한 후 - 공유하기로 합의함.
★참고 - 247. 마게도냐
Ⓔ 파니온 전투(요단강 근처)에서 - 이집트군와 싸워 승리함.
ⅱ) 이때 로마 제국 -
Ⓐ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고 -
⇒ 그리스에 개입하기 시작함.
cf) 2차 포에니 전쟁 - 로마와 카르타고(한니발 장군)의 전쟁
Ⓑ 필리포스 5세와 안티오코스 3세에게 요청함.
※ “이집트를 - 침략하지 말아라!.”
cf) 당시 로마가 - 이집트에서 많은 곡물을 수입하고 있었다.
ⅲ) 안티오코스 3세는 - 로마의 요구를 받아들인 후 -
⇒ 이집트가 점령한 - 카리아와 킬리키아 해안을 공격함.
★참고 - 245. 로마제국①②
ⅳ) 안티오코스 3세와 프톨레미 5세가 - 강화조약을 맺음.
※ 조건 - ❶ 안티오코스 3세가 - 코엘레-시리아를 차지하고,
❷ 프톨레미 5세는 - 안티오코스 3세의 딸 클레오파트라 1세와
결혼하는 조건.
⑥ 제6차 시리아 전쟁(BC 170 ~ BC 168) - 셀레우코스 왕조의 승리
로마 공화국의 간섭으로 무용지물이 됨
※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vs 프톨레미 6세, 프톨레미 8세, 로마
ⅰ) 안티오코스 3세가 마그네시아 전투의 참패로 - 아나톨리아 영토를 잃음.
⇒ 이후 식민지에서 잇따라 반란이 일어남.
ⅱ) 그러자 프톨레미 6세의 섭정이었던 - 에우라이우스와 레나이우스는 -
※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에게 - 전쟁을 선포함.
ⅲ) 그런데 안티오코스 4세가 -
❶ 키프로스 섬( = 구브로)과
멤피스( = 놉②)를 -
※ 함락시키고
★참고 - 64. 구브로
138. 놉②
❷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까지 침략함.
⇒ 이집트인들은 - 전쟁을 일으킨 에우라이우스와 레나이우스를
전복시키고 -
※ 새로운 섭정으로 - 코마누스와 키네아스를 선출함.
ⅳ) 안티오코스 4세는 -
Ⓐ 조카인 프톨레미 6세를 이용해 - 이집트를 속국화하려고 시도함.
⇒ 이에 반대한 이집트인들은 - 프톨레미 8세를
유일한 파라오로 선포함.
Ⓑ 프톨레미 8세와 클레오파트라 6세가 -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로 즉위함.
Ⓒ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했으나 - 겨울이 되자 군사를 후퇴시킴.
ⅴ) 그런데 조카 프톨레미 6세와 프톨레미 8세가 - 서로 화친하게 됨.
ⅵ) 안티오코스 4세는 - 다시 이집트를 침공
※ 이유 - 조카 프톨레미 6세를 이집트를 통제에 이용할 수 없게됨.
ⅶ) 그러자 이집트는 - 동맹국인 로마제국에 도움을 요청.
⇒ 원로원은 -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를
외교 사절로 파견.
ⅷ) 로마 라이나스는 - 안티오코스 4세에게 -
※ 즉시 이집트와 키프로스 섬( = 구브로 섬)에서 철수하라며 -
⇒ 모래 위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.
cf) 의미 - 원을 그릴 때까지 철수할 것인지
로마와 전쟁을 할 것인지 택하라!
ⅸ) 로마와의 전쟁을 원치 않았던 안티오코스 4세는 - 점령한 영토를 토해내고 퇴각함.
⇒ 이때 돌아가면서 -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남.
(3) 셀류코스(셀레쿠오스)왕들의 업적
①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(BC 305 ~ BC 281)
❶ 총독(BC 311 ~ BC 305)
❷ 셀레우코스 제국 초대왕(BC 305 ~ BC 281)
ⅰ) 프톨레미 1세 소테르의 지원으로 -
⇒ 바빌론 점령.
⇒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함.
ⅱ) 입소스 전투 이후 - 안티고노스 1세의 동방 영토를 차지.
ⅲ) 프톨레미 1세와 함께 - 안티고노스 1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를 공격.
⇒ 데메트리오스 1세를 생포(BC 285년)
ⅳ) 셀큐코스 1세와 이스라엘 - 비교적 관대했다.
Ⓐ 포로 석방령,
Ⓑ 세금 면제
Ⓒ 율법에 따라 여호화를 섬기도록 해줌.
Ⓓ 국가 보조비도 약속.
②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(BC 291년부터 공동통치, 제위 281 ~ 261 BC)
❶ 제1차 시리아 전쟁(BC 274 ~ BC 271) - 무승부
※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 vs 프톨레미 1세
ⅰ) 안티오코스 1세는 - 프톨레미 2세가 지배하고 있는
시리아 해안과 아나톨리아 남부를 점령했다
ⅱ) 이후 - 프톨레미 2세는 - 안티오코스 1세가 빼앗은 영토를 모두 되찾음.
⇒ 오히려 카리아와 시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함.
cf) 프톨레미 2세가 시리아에 가 있는 동안 -
※ 키레나이카의 - 마가스 왕이 독립을 선포함.
⇒ 안티오코스 1세와 프톨레미 2세가 휴전함.
③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(BC 261 ~ BC 246)
❷ 제2차 시리아 전쟁(BC 260 ~ BC 253) - 무승부(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우세)
※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vs 프톨레미 2세
ⅰ)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- 안티오코스 2세에게 함대를 지원함.
※ 이유 - 에게 해에서 프톨레미 2세의 해군력을 배제하려.
ⅱ) 안티오코스 2세는 - 밀레도( = 밀레투스)와 에베소( = 에페소스)를 점령함.
cf) 이때 - 마케도니아 해군은 - 코스 해전에서
이집트 함대를 전멸시킴.(BC 261년)
ⅲ) 해군력을 상실한 이집트 프톨레미 2세는 -
⇒ 밤빌리아( = 팜필리아)와 이오니아 지방을 잃게 됨.
Ⓐ 그러자 프톨레미 2세는 -
※ 고린도( = 코린토스) 와 칼키스를 선동하여 -
⇒ 마케도니아에 대항해 -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함.
Ⓑ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- 그리스로 철수.
ⅳ) 안티오코스 2세가 - 프톨레미 2세와 동맹을 맺음(BC 253년)
⇒ 프톨레미 2세의 딸 베레니케와 - 결혼함.(단 11:6)
※ 부인 라오디케와 이혼 후.
ⅴ) 안티오코스 2세가 - 39세에 갑자기 죽음(BC 246년)
⇒ 그러자 안티오코스 2세와 함께 에베소( = 에페소스)에 있었던
라오디케가 -
※ 안디옥①(안티오키아) 에 있었던 - 베레니케와 안티오코스를 - 죽임.
cf) 라오디케 - 안티오코스 2세와
안티오코스 히에락스의 어머니
ⅵ)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가 즉위함.(BC 246년)
④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 (BC 246 ~ BC 225)
❸ 제3차 시리아 전쟁(BC 246 ~ BC 241) - 이집트 프톨레미 3세 승리
※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 vs 프톨레미 3세
ⅰ)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 - 39세에 갑자기 죽음(BC 246년)
⇒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가 즉위함.(BC 246년)
ⅱ) 이집트에서 프톨레미 2세도 - 같은 해에 죽음.(BC 246년)
⇒ 프톨레미 3세 에우에르게테스가 즉위.
Ⓐ 프톨레미 3세가 - 여동생 베레니케의 요청을 받음.(단 11:7)
※ “안디옥①( = 안티오키아)로 와서 - 안티오코스를 왕위에 앉히게
도와달라!.”
Ⓑ 프톨레미 3세는 - 여동생인 베레니케가 라오디케 1세에게
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함.
ⅲ) 프톨레미 3세가 -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에게 - 전쟁을 선포함.
cf) 셀레우코스 2세 -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와 라오디케 1세 사이의 장남
Ⓐ 프톨레미 3세는 -
❶ 스파르타 출신의 용병대장 크산티포스를 고용.
⇒ 셀레우코스 2세 공격.
❷ 셀류쿠스 수도인 안디옥①( = 안티오키아)를 함락시킴.
❸ 바빌론( = 바벨론)까지 진격.
❹ 안드로스 해전에서 - 키클라데스 제도를 빼앗김.
cf) 안드로스 해전 -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이끄는
마케도니아 해군과 싸움.(BC.246)
Ⓑ 갑자기 어머니 라오디케 1세가 - 동생 안티오코스 히에락스를 앞세워
※ 아나톨리아에서 독립을 선언함.
ⅳ) 결국 - 강화 조약을 맺음.(BC 241년)
❶ 프톨레미 3세는 - 수도 안티오키아의 외항인 셀레우키아
시리아 북부 지역을 차지.(단 11:7~8)
⇒ 전성기를 맞게 됨.
❷ 셀레우코스 2세는 - 이집트와의 종전 이후 -
※ 어머니 라오디케 1세와
동생 안티오코스 히에락스를 상대로 - 내전을 벌이게 됨.
ⅴ) 앙카라 전투 - 형제들 간의 전쟁(BC 235년)(단 11:10)
※ 셀레우코스 2세 vs 안티오코스 히에락스
⇒ 안티오코스 히에락스 승리.
※ 형이 다스리던 - 아나톨리아 점령.
cf) 안티오코스 히에락스 - 하르파소스 전투에서 -
※ 페르가몬( = 버가모)의 왕 아탈로스 1세에게 - 패배함.
⇒ 도주한 트라키아에서 살해됨.(BC 229년)
ⅵ) 셀레우코스 2세 사망(BC 225년)
⇒ 장남 알렉산드로스 즉위
※ 셀레우코스 3세 케라우노스로 - 이름 개명
⑤ 셀레우코스 3세 케라우노스 (BC 225 ~ BC 223)
ⅰ) 본래 이름 - 알렉산드로스
※ 셀레우코스 3세 케라우노스로 - 이름 개명
ⅱ) 버가모( = 페르가몬) 의 아탈로스 1세를 정벌하기 위해 - 아나톨리아로 출격.
⇒ 암살당함(BC 223년)
⇒ 동생 안티오코스 3세가 즉위
⑥ 안티오코스 3세 대왕 (BC 223 ~ BC 187)
❹ 제4차 시리아 전쟁(BC 219 ~ BC 217) - 무승부(셀류코스 우세)
※ 안티오코스 3세 vs 프톨레미 4세
❺ 제5차 시리아 전쟁(BC 202 ~ BC 195) - 안티오코스 3세 승리
※ 안티오코스 3세 vs 프톨레미 5세
cf) 파네아스 전투(가이사랴 빌립보의 옛 이름)
= 바니아스 전투
= 파니온 전투
ⅰ) 자주 해외로 원정을 나갔음.
ⅱ) 이집트 프톨레미 3세 및 마우리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- 패배했음.
ⅲ) 동방으로 원정을 벌여 승리 - 많은 영토를 회복.
※ 동쪽의 메대( = 메디아) 와 바사( = 페르시아)의 반란을 - 진압.
ⅳ) 간신 헤르미아스를 죽임.
ⅴ) 제4차 시리아 전투 - 이집트 프톨레미 4세에게 - 재대결 선포
※ 이집트 군대 격파 후 - 영토로 통합.(BC 198)(단 11:10b)
⇒ 많은 땅들을 회복했음.
⇒ 3차 시리아 전쟁에서 빼앗긴 - 시리아를 되찾음.
cf)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는 -
❶ 관리들의 부정부패와
상호간의 불신으로 -
⇒ 혼란스러운 상황.
❷ 간신 소시비오스가 - 권력을 휘두름.
⇒ 프톨레미 4세의 왕권이 약함.
ⅵ) 그러나 라피아 전투에서 - 이집트군에게 패함.(단 11:11)
⇒ 프톨레미 4세와 강화조약을 맺음.
ⅶ) 제5차 시리아 전쟁(BC 202 ~ BC 195) - 안티오코스 3세 승리
※ 안티오코스 3세 vs 프톨레미 5세
cf) 파네아스 전투 = 파니온 전투 = 바니아스 전투
※ 가이사랴 빌립보의 옛 이름
Ⓐ 안티오코스 3세 -
ⓐ 소아시아에 남아있었던 반역자 아카이오스를 죽임.
ⓑ 동방 원정( = 아나바시스)을 실시함.
cf) 아나바시스(anabasis) - 해안가에서 육지 내륙부로의 여행
ⓒ 이집트 프톨레미 5세를 공격.(단 11:13)
cf) 이집트는 - 프톨레미 4세 사후 - 다시 내분에 빠진 상태임.
(단 11:15)
ⓓ 안티고노스 왕조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와 - 동맹을 맺음.(단 11:14a)
⇒ 이집트 이외의 영토를 정복한 후 - 공유하기로 합의함.
ⓔ 파니온 전투(요단강 근처)에서 - 이집트군와 싸워 승리함.(단 11:16)
Ⓑ 이스라엘 - BC 198년부터 안티오코스 3세가 이스라엘 땅을 지배하게 됨.(단 11:13~16)
❶ 이때 유대인들은 - 안티오코스 3세와 함께 -
⇒ 프톨레미 5세 왕국의 수비대를 - 같이 공격함.(단 11:14a)
❷ 안티오코스 3세는 - 이에 대한 보답으로-
⇒ 유대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음.(단 11:14b)
Ⓒ 이때 로마제국 -
ⓐ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고 -
⇒ 그리스에 개입하기 시작함.
cf) 2차 포에니 전쟁 - 로마와 카르타고(한니발 장군)의 전쟁
ⓑ 필리포스 5세와 안티오코스 3세에게 요청함.
※ “이집트를 - 침략하지 말아라!.”
cf) 당시 로마가 - 이집트에서 많은 곡물을 수입하고 있었다.
Ⓓ 안티오코스 3세는 - 로마의 요구를 받아들인 후 -
⇒ 이집트가 점령한 - 카리아와 킬리키아 해안을 공격함.
Ⓔ 안티오코스 3세와 프톨레미 5세가 - 강화조약을 맺음.
※ 조건 - ❶안티오코스 3세가 - 코엘레-시리아를 차지하고,
❷ 프톨레미 5세는 - 안티오코스 3세의 딸 클레오파트라 1세와
결혼하는 조건.(단 11:17)
ⅷ) 아이톨리아인들과 - 안티오쿠스 3세의 연합.
Ⓐ 그리스 중부지역에 사는 아이톨리아인들은 - 그리스의 독립에 불만.
Ⓑ 자신들을 지배했던 마케도니아에게 복수하고 싶어 -
⇒ 셀류커스 왕조 안티오쿠스 3세에게 도움을 요청.
⇒ 로마를 불쾌하게 함.
ⓐ BC 197년 이후 마케도니아는 - 로마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었음.
※ 마케도니아를 공격하는 것은 -
⇒ 곧 로마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여김.
ⓑ 마침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- 셀류커스 왕조에 망명해 있었음.
※ 셀류커스 왕조의 경제력이 최고 수준이었다.
Ⓒ 안티오쿠스 3세는 - 전쟁에 승리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-
⇒ 아이톨리아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임.
ⓐ BC 191년 - 6만 대군을 이끌고 마케도니아를 공격해
알렉산더의 확실한 후계자의 자리를 잡고자 진격함.
⇒ 로마에게 무참히 깨짐.
ⓑ BC 190년 - 로마에게 5000 달란트의 전쟁 배상금을 물게 됨.
❶ 안티오쿠스 3세는 - 나라 안에 있는 신전들의 재산을
압류하기 시작함.
⇒ 예루살렘 성전에게도.
⇒ 유대 백성의 반대가 일어남.
❷ 로마에 패배한 대가로 - 아들 안티오쿠스 3세가 -
⇒ 14년 동안 - 로마의 인질로 잡혀감.(단 11:20)
ⓒ 마그네시아 전투의 참패로 - 아나톨리아 영토를 잃음.(BC 190년)
⇒ 이후 식민지에서 - 잇따라 반란이 일어남.
ⅸ) 로마와 - 3번의 전투 끝에 - 완전히 패배.(단 11:18~19)
⇒ 제국의 군사력과 패권이 많이 사라지게 됨.
ⅹ) 암살당함 - 동방 재원정 중.
⇒ 이후 제국은 급격히 쇠퇴하게 됨.
⑦ 셀레우코스 4세 필로메토르 (BC 187 ~ BC 175)
⑧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- 다니엘서와 관련.(BC 175 ~ BC 164)(단 11:20~45)
❻ 제6차 시리아 전쟁(BC 170 ~ BC 168) - 셀레우코스 왕조의 승리
cf) 로마 공화국의 간섭으로 - 승리의 의미가 없어짐.
※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vs 프톨레미 6세, 프톨레미 8세, 로마
ⅰ) 아버지 안티오쿠스 3세가 로마에 패배한 대가로 -
⇒ 14년 동안 - 로마의 인질로 잡혀있었다.(단 11:20)
ⅱ) 제국의 재확장을 꾀했으나 - 실패
※ 로마의 계속되는 견제
ⅲ) 이집트 정복을 계획.
※ 2차례 이집트에 원정 - 거의 제압해 감.
⇒ 그러나 로마도 - 이집트 정복을 계획했다.
⇒ 안티오쿠스 4세는 - 꿈을 이루지 못함.
⇒ 지중해 대부분이 - 이미 로마의 손에 넘어감.
ⅳ) 마그네시아 전투의 참패로 - 아나톨리아 영토를 잃음.(BC 190년)
⇒ 이후 식민지에서 - 잇따라 반란이 일어남.
ⅴ) 그러자 프톨레미 6세의 섭정이었던 - 에우라이우스와 레나이우스는 -
※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에게 - 전쟁을 선포함.
ⅵ) 그런데 안티오코스 4세가 -
❶ 키프로스 섬( = 구브로 섬)과
멤피스( = 놉②)를 - 함락시키고
❷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까지 침략함.
⇒ 이집트인들은 - 전쟁을 일으킨 에우라이우스와 레나이우스를
전복시키고 -
※ 새로운 섭정으로 - 코마누스와 키네아스를 선출함.
ⅶ) 안티오코스 4세는 -
Ⓐ 조카인 프톨레미 6세를 이용해 - 이집트를 속국화하려고 시도함.
⇒ 이에 반대한 이집트인들은 - 프톨레미 8세를
유일한 파라오로 선포함.
Ⓑ 프톨레미 8세와 클레오파트라 6세가 -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로 즉위함.
Ⓒ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했으나 - 겨울이 되자 군사를 후퇴시킴.
ⅷ) 그런데 조카 프톨레미 6세와 프톨레미 8세가 - 서로 화친하게 됨.
ⅸ) 제6차 시리아 전쟁(BC 170 ~ BC 168) - 셀레우코스 왕조의 승리
cf) 로마 공화국의 간섭으로 - 승리가 무의미하게 됨.
※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vs 프톨레미 6세, 프톨레미 8세, 로마
Ⓐ 안티오코스 4세는 - 다시 이집트를 침공
※ 이유 - 조카 프톨레미 6세를 이집트를 통제에
이용할 수 없게 됨.
Ⓑ 그러자 이집트는 - 동맹국인 로마제국에 도움을 요청.
⇒ 로마 원로원은 -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를
외교 사절로 파견.
Ⓒ 로마 라이나스는 - 안티오코스 4세에게 -
※ 즉시 이집트와 키프로스 섬( = 구브로 섬)에서 철수하라며 -
⇒ 모래 위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.
cf) 의미 - 원을 그릴 때까지 철수할 것인지
로마와 전쟁을 할 것인지 택하라!
Ⓓ 로마와의 전쟁을 원치 않았던 안티오코스 4세는 - 점령한 영토를 토해내고 퇴각함.
ⅹ) 이때 - 이집트 점령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- 예루살렘에 들림.
⇒ 전쟁에 진 분풀이를 하게 됨(단 11:30b)
Ⓐ 이유 - 유대가 자신의 헬라 정책에 반대하는 것에 분노함.
Ⓑ 유대를 핍박함
❶ 예루살렘 성전에서 돼지를 잡아 - 제우스신에게 제사를 드림.
❷ 할례를 실시한 아이들을 찾아 - 죽이고
⇒ 죽은 아이의 시체를 - 그 어머니 목에 걸어 놓게 함.
❸ 제사장 600명을 묶어 - 그 위로 마차가 지나가게 해
잔인하게 죽임.
ⅺ) 안티오쿠스 4세의 잔인한 유대교 탄압(BC 168년) (단 11:30~38)
Ⓐ 자기 자신을 - 제우스 신과 동일시함.
⇒ ‘보이는 신’이라는 의미의 - ‘에피파네스’ 라는 호칭을 사용.
Ⓑ 제우스와 자기 자신의 신상을 - 성전에 세움.
※ 사람들로 하여금 - 숭배하게 함.
⇒ 이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– 처형함.
Ⓒ 유대의 제사장직을 - 경매에 부쳐 -
⇒ 최고의 입찰자인 메넬라우스에 팜.
Ⓓ 곳곳에 - 자신과 우상들의 신전을 세움
Ⓔ 예루살렘 성전을 - 우상으로 더럽혔다.
★참고 - 524. 성전①~⑩
⒈ 성전에 - 제우스 신상등 우상들을 세우고
제사를 강요함.
⇒ 하나님이나 다른 신을 섬기면 – 처형함.
⒉ 돼지 피를 - 성전에 뿌리기도 하며
돼지로 - 제사를 지내게도 함.
cf) 돼지는 – 유대인들이 부정하다 여기는 것임.
Ⓕ 예루살렘의 성전의 성물들을 - 갖다 버림.
Ⓖ 유대교의 규례와 제사와 절기들을 - 모두 금지시킴.
※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- 사형에 처한다.
cf) 마카베오 상 1장 참고
⒈ 유다인들은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를 것.
⒉ 성전 안에서 - 제사 금지
⒊ 안식일과 기타 절기들을 - 지키지 말 것.
⒋ 성전와 제사장들을 - 모독할 것.
⒌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- 희생제물로 잡아 바칠 것.
⒍ 사내아이들에게 - 할례를 주지 말 것.
⒎ 온갖 종류의 음란과 모독의 행위로 - 스스로를 더럽힐 것.
Ⓗ 많은 유대인(특히 하시딤 - 언약의 사람들)들이 고난을 당함.
(마카비1서 1:60 이하, 마카비1서 2:29 이하)
⇒ 훗날 - 많은 하시딤들이 - 맛다디아 가문과 연합하게 됨.
⑨ 안티오쿠스 5세 - 리시아스 장군과 섭정(BC 164 ~ BC 162)
ⅰ) 마카비 혁명 - 유대인 독립전쟁(BC 166 ~ BC 143년)
❶ 마카비가 - 혁명을 일으키고
- 성전을 정화시켰다.
❷ 결과 - 시리아( = 수리아)의 영토가 줄어들음.
★참고 - 258. 마카비
267. 맛다디아
Ⓐ 마카비 - 맛다디아의 3째 아들
Ⓑ 엠마오 전투에서 - 승리
※ 게릴라군을 이끌고
숫적으로 월등히 많은 수리아군에 대항하여 승리.
⇒ 그 결과 - 안티오쿠스 5세와 섭정인 리시아스 장군은
마카비와 평화조약을 맺게 됨.
cf) 리시아스 - 유대의 종교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도움.
Ⓒ 마카비 혁명 - BC 164년 기슬래월 25일.
❶ 예루살렘을 빼앗은 후
❷ 성전을 정화함 - 성전의 제우스 상을 없앰.
※ 예루살렘 성전을 거룩하게 정화한 후 - 봉헌축제를 가짐.
(BC 165년)
⇒ 이 날을 - 수전절(=하누카)로 지켰다.(마카비1서 4장, 요 10:22)
⇒ 이로 인해 -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기도 했음.
⇒ 마카비 일가는 이를 진압하고자 함.
ⅱ) 마카비 전사함 - 엘랏사(엘라사)에서 시리아( = 수리아)군과 싸우다가.(BC 161년)
⑩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 (BC 161 ~ BC150)
ⅰ) 대제사장 요나단⑥과 - 협상함.
★참고 - 178. 대제사장①②
Ⓐ 요나단⑥은 -
ⓐ 맛다디아의 5번째 아들
ⓑ 산위로 쫓겨 난 게릴라들을 통솔.
⇒ 유대의 유능한 지도자가 됨.(BC 161년)
ⓒ 대제사장으로 임명됨. - 셀류쿠스 왕국과의 협상으로부터.(BC 153년)
cf) 아론의 직계 자손이 아니다.
Ⓑ 마카비 일가와 하시딤(바리새파) 사이에 - 불화가 생김.
★참고 - 343. 바리새인
❶ 헬라화로 - 성전은 더럽혀졌고
❷ 제사장 자리는 - 이 하스몬가의 제사장과 왕들 빼앗겼다고
여겼기 때문.
ⅱ) 그러나 마카비 일가는 - 유대 민족주의와 신약시대의 메시아
사상에 대한 틀을 잡아 줌.
⇒ 열심당원들은 종종 마카비의 이상과 연결됨.
⑪ 알렉산드로스 발라스 (BC 150 ~ BC145)
⑫-1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 (1번째 BC 145 ~ BC138)
ⅰ) 유대 하스몬 왕조와 - 동맹을 맺음
cf) 하스몬 왕조 = 하스모니안 왕조
ⅱ) 시몬⑩ 3세 - 하스몬 왕조를 열음(BC 142 ~ BC 63년)
Ⓐ 맛다디아의 2번째 아들
Ⓑ 군사령관과 대사장직을 겸직함.
Ⓒ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- 처음으로 독립하게 됨.
ⓐ 셀류쿠스의 데메트리오스 2세와 - 동맹을 맺음.
※ 이유 - 새로 셀류쿠스의 왕이 된 트리폰을 없애기 위해.
ⓑ 결과 - 데메트리오스 2세로부터
약속받은 세금 면제, 자치권, 왕권을 얻게 됨.
⑬ 안티오코스 6세 디오뉘소스 또는 에피파네스 (BC 145 ~ BC140)
⑭ 디오도토스 트뤼폰 (BC 140 ~ BC138 BC)
⑮ 안티오코스 7세 시데테스 또는 에우에르게테스(BC 138 ~ BC129)
⑫-2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 (2번째 BC 129 ~ BC126)
⑯ 알렉산드로스 2세 자비나스 (BC 129 ~ BC123)
⑰ 클레오파트라 테아 (BC 126 ~ BC123)
⑱ 셀레우코스 5세 필로메토르(BC 126 ~ BC125)
⑲ 안티오코스 8세 그뤼포스 (BC 125 ~ BC96)
⑳ 안티오코스 9세 퀴지케노스 (BC 114 ~ BC96)
㉑ 셀레우코스 6세 에피파네스 니카토르 (BC 96 ~ BC95)
㉒ 안티오코스 10세 에우세베스 필로파토르(BC 95 ~ BC 92 or 88)
㉓ 데메트리오스 3세 에우카이로스 또는 필로파토르(BC 96 ~ BC 87)
※ 안티오코스 8세 그뤼포스의 아들
㉔ 안티오코스 11세 에피파네스 필라델포스(BC 94 ~ BC93)
㉕ 필리포스 1세 필라델포스 (BC 94 ~ BC 83)
㉖ 안티오코스 12세 디오뉘소스 (BC 87 ~ BC 82)
㉗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(BC 83 ~ BC 69)
cf)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4대 샤
㉘ 셀레우코스 7세 퀴비오사크테스 또는 필로메토르(BC 83 ~ BC 69)
cf) 아르메니아 티그라네스가 침략했을 때 왕
㉙ 안티오코스 13세 아시아티코스(BC 69 ~ BC 64)
cf) 안티오키아 시민들이 왕으로 삼음.
㉚ 필리포스 2세 필로로마이오스(BC 65 ~ BC 63)
❶ 셀류쿠스 왕조의 마지막 왕 - 아랍의 협조로 왕이 됨.
⇒ 안티오코스 13세와 경쟁함.
❷ 로마 폼페이우스에게 멸망(BC 64년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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