691. 아다드 니나리 3세(Adad nirari Ⅲ) - 앗수르 왕, 요아스①에게 조공 받음
① 의미 - ‘아다드 신은 저를 도우소서’
② 앗수르( = 아시리아 = 앗시리아)의 왕
③ 다른 이름 - 아닷 니나리
④ 재위 - BC 810년 ~ BC 782년
※ 신왕조 앗수르시대(BC 1,200 ~ BC 626년)
❶ 아다드-니라리 2세(Adad-nirari II)(BC 912 ~ BC 891)
❷ 투쿨티-닌우르타 2세(Tukulti-Ninurta II) (BC 891 ~ BC 884)
❸ 앗수르-나시르-팔 2세(Ashur-nasir-pal II) (BC 884 ~ BC 859)
❹ 살만에셀① 3세(Shalmaneser III) (BC 859 ~ BC 824)
❺ 샴시-아닷 5세(Shamshi-Adad V) (BC 822 ~ BC 811)
❻ 아다드-니라리 3세(Adad-nirari III) (BC 811 ~BC 783)
※ 샤무-라마트 섭정 (BC 811 ~ BC 810)
❼ 살만에셀 4세(Shalmaneser IV) (BC 783 ~ BC 773)
❽ 앗수르-단 3세(Ashur-Dan III )(BC 773 ~ BC 755)
※ 요나선지자 예언 - 니느웨 회개
❾ 아슈르-니라리 5세(Ashur-nirari V) (BC 755 ~ BC 745)
❿ 디글랏빌레셀 3세(Tiglath-Pileser III) - 불(Pul) (BC 745 ~ BC727)
※ 1차 앗수르 유수 - 다메섹(아람)
⓫ 살만에셀② 5세(Shalmaneser V) (BC 727 ~ BC 709)
⓬ 사르곤③ 2세(Sargon II) (BC722 ~ BC705)(BC 722 ~ BC709)
※ 2차 앗수르 유수 - 북이스라엘
⓭ 산헤립(Sennacherib) (BC 705 ~ BC 681)
⓮ 엣살핫돈(Esarhaddon) (BC 681 ~ BC 669)
⓯ 앗수르바니팔(Ashurbanipal) (BC 669 ~ BC 631 or BC 627)
※ 앗수르 멸망 - 바벨론에게.
cf) 남은 자들이 있었다.
⓰ 아슈르-에틸-이라니(Ashur-etil-ilani) (BC 631 ~ BC627)
⓱ 신-슈무-리시르(Sin-shumu-lishir) (BC 626 )
⓲ 신-샤르-이쉬쿤(Sin-shar-ishkun) (BC 627 ~ BC612)
※ BC 612년 - 앗수르 수도 니느웨는 - 메대와 바빌론에 함락되었다.
앗수르의 장군은 - 이집트의 지원으로 하란① 에서 몇 년 계속 다스렸다.
⓳ 앗수르 우발리트 2세(Ashur-uballit II) (BC 612 ~ BC 609)
※ 남은 앗수르인들과 - 하란①에서 나라를 일으켰으나 -
⇒ 앗수르 완전히 멸망
⑤ 가족 -
ⅰ) 아버지 - 샴시-아다드 5세
ⅱ) 아들 - ❶ 앗수르 단 3세( = 아슈르 단 3세)
❷ 살만에셀 4세
❸ 앗수르 니라리 5세( = 아슈르-니라리 5세)
ⅲ) 손자 - 디글랏 빌레셀 3세( =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)
★참고 - 204. 디글랏 빌레셀 3세
⑤ 어릴 때 즉위하여 - 치세 5년 동안 - 태후 샤무-라마트가 섭정함.
ⅰ) 어머니 샤무 라마트가 - 정권을 휘두름.
ⅱ) 어머니 샤무라마트에 관계가 깊은 - 환관의 세력이 - 커졌고 -
⇒ 왕권이 약화되는 - 원인이 됨.
⑥ 국내 정치에 성공하면서 - 다시 당대 최고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함.
⑦ 정복전쟁 - 서부 원정으로 - 헷(힛타이트), 다메섹, 두로, 시돈, 에돔, 블레셋 등을 복종시킴.
ⅰ) 바벨론의 원정 - 갈데아 인등을 정복.
⇒ 갈대아 족장들 중에 몇 명은 - 아닷니라리 3세의 봉신이됨.
ⅱ) 그의 부하들은 많은 원정을 행하여 - 앗수르의 영토를 크게 확장함.
ⅲ) 그러나 왕권이 약했음.
※ 이유 - 이들 장군들이 정복지의 지배자와 같이 되어 -
⇒ 지방 속주에 대한 앗수르 왕의 통제력은 - 극히 약화됨.
cf) 장군들에게 - 자율권을 많이 주었다.
ⅳ) 북이스라엘 요아스①에게 - 조공을 받음.(아다드 - 니라리 3세의 비문)
ⅴ) 다메섹( = 다마스쿠스 = 다마스커스)을 - 잠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② 2세에게 뺏김.
(왕하 14:23~26)
cf) 북이스라엘 여로보암② 2세는 - 강력한 국방정책과 경제 부흥을 이루고
국력을 회복함.(왕하 14:25~28)
⇒ 정복전쟁이 활발했음 - 이스라엘 북부 접경지대를 솔로몬 시대만큼 회복함.
(왕하 14:25)
Ⓐ 하맛 어귀(레바논 베카계곡)부터 아라바까지 - 요나의 예언처럼(왕하 14:25)
※ 왕하 14:25 -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
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
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-
※ 여로보암②이 -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-
⇒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
하였으니
Ⓑ 다메섹( = 다마스커스 = 다마스쿠스)까지(왕하 14:28)
※ 왕하 14:28 - 여로보암②의 -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
- 싸운 업적과
-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
-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-
※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-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?
Ⓒ 원인 -
ⓐ 여호와의 허락하에 - 번영하였다.(왕하 14:26~27)
※ 왕하 14:26 - 이는 여호와께서 -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-
⇒ 매인 자도 - 없고
놓인 자도 - 없고
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- 없음을 보셨고
왕하 14:27 - 여호와께서 또 -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
없이 하겠다고도
아니하셨으므로 -
⇒ 요아스①의 아들 여로보암②의 손으로 - 구원하심이
었더라
ⓑ 아람(다메섹) - 힘이 약해졌고
ⓒ 앗수르 - ❶ 내부에서는 - 왕권이 약해짐.
※ 왕이 행사할 권력이 - 지방 관료들에게 넘어감.
❷ 지방 총독들은 - 왕에게 형식적으로 충성을 서약했지만 -
※ 상당히 자율적으로 행동함.
⑧ 신전 건설 - 니느웨( = 니네베)의 나부 신전을 시작으로 각지에 신전을 건축.
⑨ 정복 기념 석비를 만듦 - 1967년 지금 이라크의 알-리마의 한 성소에서 발견됨.
ⅰ) 석비의 내용 -
“ . . .해가 떠오르는 실루나 산부터, 사반, 엘리피, 하르하르, 아라지아쉬,
메대인들의 나라, 기질분다 전역, 문나, 페르시아, 알라브리아, 압다다나,
나이리 전역, 저 멀리 피트후 산지에 있는 안디우 전역, 두로, 시돈,
이스라엘, 에돔, 블레셋, 해가 지는 큰 바다 해변까지 -
※ 내가 - 모든 나라들을 - 내 발 앞에 항복시켰고,
그들에게 공물을 부과했다. . . .
나는 다메섹 왕 마리(Mari)를 공격했다. . . .
그의 왕가로부터 은 2300달란트, 금 20달란트, 철 5000달란트 등을 받았다…”
ⅱ) 북이스라엘 요아스①에게 - 조공을 받음이 기록됨.(BC 796년쯤)
ⅲ) 북이스라엘, 다메섹, 두로, 에돔, 블레셋 등 많은 나라가 - 앗수르에 정복됨.
cf) 북이스라엘이 - 다메섹의 억압에서 벗어난 동시에
앗수르의 지배 아래 들어갔음.
※ 다메섹 - 수리아( = 아람) 왕국의 수도
⑩ 아들 살만에셀 4세가 - 왕위를 이음.
'9. 아가서 ~아히야' 카테고리의 다른 글
693. 아닥사스다② 1세(Artaxexes Ⅰ) -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통해 바벨론 포로를 귀환 시킴 (0) | 2024.06.17 |
---|---|
692. 아닥사스다(Artaxexes)① - 캄비세스 2세, 성전 재건 중단 시킴 (0) | 2024.06.15 |
690. 아낙, 아낙자손(Anak, Anakites) - 네피림의 후손, 크고 강한 거인족 (0) | 2024.06.15 |
689. 아나니아(Ananias)③ - 대제사장, 바울을 심문하고 죽이려 하며 고소함 (0) | 2024.06.14 |
688. 아나니아(Ananias)②- 다메섹 제자, 사울②( = 바울)에게 안수와 세례를 줌 (0) | 2024.06.14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