866. 애굽(Egypt)⑧ - 이집트 신왕국 19왕조, 람세스 2세, 제 3 중간기
(2) 신왕국 19왕조(BC 1293년 ~ BC 1185년) - 수도 : 타니스(소안)
※ 고대 이집트 시대의 최전성기이자 - 신왕국 시대의 황금기.
1) 람세스 1세(Ramses Ⅰ) = 라메세스(Ramesses) = 라메수(Ramesu) (BC 1293년 ~ BC 1291년)
※ 18왕조 마지막 왕 호렘헤브(Horemheb)의 친구
cf) 호렘헤브 - 평민 파라오
혼란을 수습하고
친구인 람세스 1세에게 - 왕위를 물려줌.
2) 세티 1세(Seti Ⅰ)(BC 1302년 ~ BC 1290년) ※ 람세스 1세의 아들
3) 람세스 2세(Ramesses Ⅱ the Great)(BC 1290년 ~ BC 1224년)
※ 18왕조 말 혼란기에 잃었던 이집트의 영토와 위신을 바로 세우고자 함.
⇒ 백성들이 많이 찬양함.
❶ 최전성기를 이끔 - 정복전쟁 활발
❷ 수도를 옮김 - 페르라메수( = 피람세스 Per Ramessu = 라암셋(Raamses)
※ 테베 → 페르라메수( = 라암셋)
❸ 신전 건설 - 건축 사업을 많이 함.
※ 카르낙 신전, 아비도스 신전, 테베 신전, 아부심벨 신전등
많은 신전들을 건축.
손상된 신전들을 돌봄.
❹ 뛰어난 예술품들을 남김 - 신앙심을 굳건히 함.
❺ 카데쉬 전투 - 히타이트와 전투 후 평화조약 맺음
❻ 우물을 팜.
① 가족
ⅰ) 할아버지 - 람세스 1세
ⅱ) 할머니 - 시트레(Sitre)
ⅲ) 아버지 - 세티 1세
ⅳ) 어머니 - 투야
ⅴ) 형제 - ❶ 헨트미레 ❷ Nebchasetnebet ❸ Amennefernebes,
ⅵ) 여동생 - 티아
ⅶ) 부인 - ❶ 네페르타리 ❷ 빈타나트 ❸ 마아토르네페루레
❹ 이세트노프레트 ❺ 네베타위
cf) 네페르타리 - 람세스 2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
ⅷ) 자녀 - ❶ 메르넵타 ❷ 람세스 ❸ 빈타나트 ❹ 아멘호테프
❺ 네베타위 ❻ 메리타멘 외에 많음.
ⅸ) 손자 - ❶ 세티 2세 ❷ 아멘메세스 외에 많음.
② 세티 1세의 - 2째 아들
③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파라오 중 1명 - 최전성기를 이끔.
※ 리비아, 누비아, 팔레스타인까지 - 세력을 확장하고 번영함.
cf) 팔레스타인과 시리아( = 수리아)는 - 완전 정복은 아니었음.
ⅰ) 왕에 오르자마자 - 시리아, 나일 제 1강을 넘어 누비아 등 여러 차례 원정을 다님 원정
ⅱ) 전승비를 많이 세움.
ⅲ) 훗날 누비아는 - 이집트에 동화되어
이집트의 쇠퇴를 구원하는 형태의 왕조를 세우게 됨.
ⅳ) 12년에 걸친 2차례의 원정 -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.
⇒ 점령은 실패.
ⅴ) 오해 - 출애굽 때의 왕을 람세스 2세로 오해함.
cf) 이유 - 영화 때문(제작자의 시대 착오)
※ 출애굽 시기 왕은 - 신왕국 18왕조 아멘호텝 2세 때임.
★참고 - 723. 아멘호텝 2세
❶ 아멘호텝 2세 – 홍해에 빠져 익사
cf) 장남 위벤세누 - 10번째 장자의 재앙때 죽임 당함.
⇒ 2째 아들 투트모세 4세가 왕이 됨.
❷ 람세스 2세 – 90살까지 살았다.
④ 수도를 옮김 - 페르라메수( = 피람세스 Per Ramessu)로.
※ 테베 → 페르라메수
ⅰ) 이유 - 시리아( = 수리아)와 팔레스타인( = 가나안) 지역을 정복하기 쉽게.
⑤ 신전 건설 - 건축 사업을 많이 함.
⇒ 백성들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동이 활발해짐.
❶ 아부심벨 대신전, 카르낙 신전, 아비도스 신전, 테베 신전등
❷ 손상된 신전들을 – 다시 손질함.
⑥ 뛰어난 예술품들을 남김
❶ 자신의 얼굴을 새긴 조각상을 - 이집트 전역에 세움.
❷ 이전 파라오의 조각상에 새겨진 이름을 지우고 -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도 함.
⑦ 카데쉬 전투( = 카데시전투 Battle of Kadesh)
cf) 이 전투 결과에 대해서는 - 양쪽 기록이 다르다.
ⅰ) 히타이트와 세력다툼 -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.
ⅱ) 직접 출정하여 -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와 전투
ⅲ) 거짓 정보에 속아 - 주력 군단이 전멸할 정도로 고된 전투를 벌임.
cf) 거짓정보 - “히타이트가 카데쉬를 포기했다.”
ⅳ) 평화조약을 맺고 서명(BC 1258년)
Ⓐ 상황 - 서로를 물리치지 못하고 - 장기간 전쟁만 계속하던 중
Ⓑ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- 휴전함.(BC 1258년, 재위 21년)
Ⓒ 히타이트 왕녀를 왕비로 맞이함 -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
⑧ 이집트의 번영을 위해 - 우물을 많이 팜.
⑨ 13번째 아들 메르넵타( = 메렌프타)에게 - 왕위를 물려줌.
❶ 이유 - 아들들이 모두 - 일찍 죽었기 때문에.
cf) 아버지 람세스 2세가 - 90살까지 살았다.
⇒ 그래서 아들들이 먼저 죽음.
❷ 메르넵타가 왕이 된 나이 - 약 70세 정도.
4) 메르넵타 Merenptah( = 메렌프타Merenptah) (BC 1213년 ~ BC 1203년)
①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.
ⅰ) 그의 형들이 모두 - 일찍 죽었기 때문에 - 왕위에 오르게 됨.
ⅱ) 메르넵타가 왕이 된 나이 - 약 70세 정도.
※ 이유 - 아들들이 모두 - 일찍 죽었기 때문에.
cf) 아버지 람세스 2세가 - 90살까지 살았다.
⇒ 그래서 아들들이 먼저 죽음.
② 가족
ⅰ) 아버지 - 람세스 2세
ⅱ) 어머니 - 이세트노프레트( = 이제트0
ⅲ) 아들 - ❶ 세티 2세(Seti Ⅱ) ❷ 타우스레트(Tausret) ❸ 아멘모세( = 아멘메세스)
③ 람세스 2세 재위 40년에 - 육군 감독관이 됨.
④ 람세스 2세 재위 55년에 - 공식적으로 황태자로 선포됨.
⑤ 아버지 람세스 2세와 섭정 - 12년 동안.
※ 람세스 2세의 생애 마지막 12년 동안.
⑥ 수도를 - 멤피스( = 놉②)로 - 다시 옮김.
※ 피라메세( = 피라메스 Piramesse) → 멤피스(Memphis)
ⅰ) 아버지 람세스 2세의 수도 피라메세( = 피라메스 Piramesse)에서 -
⇒ 멤피스(Memphis)로 이집트의 행정 중심지를 다시 옮김.
ⅱ) 멤피스에서 - 프타 신전 옆에 왕궁을 세움.
5) 세티 2세(Seti Ⅱ)(BC 1213년 ~ BC 1207년)
① 메르넵타의 아들
② 가족
ⅰ) 할아버지 - 람세스 2세
ⅱ) 아버지 - 메르넵타
ⅲ) 어머니 - 세트노프레트 2세
ⅳ) 이복형제 - 아멘모세( = 아멘메세스)
※ 메르넵타와 타크하트(Takhat)의 아들
ⅴ) 이복 누이 - 투스레트(Twosret) = 타우세레트(Tauseret)
※ 메르넵타와 타크하트(Takhat)의 딸
ⅵ) 부인 - ❶ 투스레트(Twosret) = 타우세레트(Tauseret)
※ 메르넵타와 타크하트(Takhat)의 딸
cf) 투스레트는 - 이복누이이자 부인
❷ 수탈리자
③ 이복동생 아멘모세가 - 세티 2세의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고 - 반란을 일으켜 -
⇒ 자칭 파라오가 됨.
ⅰ) 테베를 중심으로 한 - 상이집트 일대와 누비아 지방에서
세티 2세에게 반란을 일으킴.
ⅱ) 세티 2세가 - 반란을 진압함.
❶ 4년도 못되어 - 세티 2세에게 진압됨.
❷ 그러나 진압 이전에 죽음 - 직접적으로 죽임당하지 않음.
❸ 사후 - 무덤이 세티 2세에게 파괴됨.
④ 그러나 왕위를 - 아멘모세의 아들 십타에게 물려 줌.
※ 이유 - 구스③( = 쿠시) 총독이자 재상이었던
라메세 카멘테루의 압력.
6) 아멘모세(Amenmosse = 아멘메세스 Amenmesse)(BC 1203년 ~ BC 1200년)
① 비정통 파라오 - 반란을 통해 스스로 왕이 됨.
② 가족
ⅰ) 할아버지 - 람세스 2세
ⅱ) 아버지 - 메르넵타
ⅲ) 어머니 - 타크하트(Takhat)
ⅳ) 친누이 - 투스레트(Twosret) = 타우세레트(Tauseret)
ⅴ) 이복형제 - 세티 2세(Seti Ⅱ)
③ 세티 2세의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고 - 반란을 일으켜 - 자칭 파라오가 됨.
ⅰ) 테베를 중심으로 한 - 상이집트 일대와 누비아 지방에서
세티 2세에게 반란을 일으킴.
※ 누비아의 총독과
카르나크 신전의 아문 대신관들을 - 자신의 반란에 동참하게 만듦.
ⅱ) 세티 2세에게 - 진압됨
※ ❶ 4년도 못되어 - 세티 2세에게 진압됨.
❷그러나 진압 이전에 죽음 - 직접적으로 죽임 당하지 않음.
❸ 사후 - 무덤이 세티 2세에게 파괴됨.
④ 기록말살형 - 아들 십타와 함께.
ⅰ) 누비아의 신전에서 - 머리가 의도적으로 훼손된 사람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
아기 시절의 십타.
ⅱ) 특히 후대 람세스 3세의 왕명록에서 - 십타의 이름이
아멘메세스와 함께 의도적으로 누락됨
7) 십타( = 시프타 Siptah)(BC 1197년 ~ BC 1191년)
① 아멘모세의 아들
② 가족
ⅰ) 할아버지 - 메르넵타
ⅱ) 할어머니 - 타크하트(Takhat)
ⅲ) 아버지 - 아멘모세
ⅳ) 어머니 - 수탈리자
ⅴ) 이복 삼촌 - 세티 2세
ⅵ) 친고모 - 투스레트(Twosret) = 타우세레트(Tauseret)
③ 왕위를 - 세티 2세에게 물려받음.
※ 가능했던 이유 - 구스③( = 쿠시) 총독이자 재상이었던
라메세 카멘테루의 압력.
④ 아버지 아멘모세와 함께 - 기록말살형에 쳐했다.
ⅰ) 누비아의 신전에서 - 머리가 의도적으로 훼손된 사람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
아기 시절의 십타.
ⅱ) 특히 후대 람세스 3세의 왕명록에서 - 십타의 이름이
아멘메세스와 함께 의도적으로 누락시킴.
8) 투스레트(Twosret) = 타우세레트(Tauseret)(BC 1191년 ~ BC 1190년)
① 여왕 - 십타가 죽은 뒤 - 1년.
② 세티 2세의 - 이복누이이자 왕비
③ 가족
ⅰ) 할아버지 - 람세스 2세
ⅱ) 아버지 - 메르넵타
ⅲ) 어머니 - 타크하트( = 타카트 Takhat)
ⅳ) 친남매 - 아멘모세
ⅴ) 이복남매 - 세티 2세(Seti Ⅱ)
ⅵ) 남편이자 이복 남매 - 세티 2세(Seti Ⅱ)
(3) 신왕국 제 20 왕조 (BC전 1185년 ~ BC 1069년) - 람세스 왕조
※ 신왕국의 마지막 왕조
① 람세스 11세가 재위하는 동안 - 사회가 혼란했다.
cf) 람세스 11세((Ramesses Ⅺ, BC 1098년 ~ BC 1070년)
❶ 왕위를 - 아멘 대사제단 헤리호르에게 찬탈됨.
❷ 자식이 없이 죽자 - 그의 장례식을 집전한 스멘데스( = 스케데스)가 왕이 됨.
❸ 신왕국 멸망 - 제 3중간기 혼란기 시작.
ⅰ) 많은 서부 테베 주민들은 - 요새화된 람세스 3세 신전에서 살았다.
ⅱ) 아몬 신관들의 - 타락
Ⓐ 신전에는 - 여러 차례에 걸쳐 아몬 신의 최고 사제 자리가 비어 있었고
※ 심지어 최고 사제 아멘호텝도 - 8개월 동안 정직당하기도 했음.
Ⓑ 최고 사제의 자리가 공백이 되자 -
⇒ 테베는 - 거의 무정부 상태에 이름.
ⅲ) 도굴과 약탈이 성행.
Ⓐ 사람들이 - ‘왕들의 무덤 계곡’까지 도굴하고 많은 도굴에 행함.
Ⓑ 강도들 - 약탈을 일삼았고
Ⓒ 테베의 사제들과 묘지 관리인들 - 이집트 제19왕조와 이집트 제20왕조의
신전 안의 물품들을 약탈함.
ⅳ) 헤리호르(Herihor)가 나타남 - ❶ 군인 출신 새 지도자
❷ 왕위를 찬탈한 - 아몬 신의 최고 사제
Ⓐ 질서를 바로잡고 - 아몬 신의 최고 사제가 됨.
Ⓑ 자신의 상관 아멘호테프를 억압했던 - 핀하시의 직함을 차지.
(람세스 11세 재위 19년초)
Ⓒ 총리(와지르) 직위도 - 겸함.
Ⓓ 테베의 콘스 신전에서는 - 왕의 지위까지 침해함.
Ⓔ 테베에서 - 쿠시족의 왕을 축출.
Ⓕ 새 책력을 실시해 - 자신이 왕이 된것을 나타내려 함.
Ⓖ 콘스신의 신전의 기록
❶ 칭호 - 아몬신의 최고 사제이자, 장군, 지휘관.
❷ 신전의 앞마당에 이르면 - 정식으로 파라오의 칭호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음.
※ 그러나 람세스 11세는 - 헤리호르보다 약 2년 더 살았음.
ⅴ) 헤리호르가 죽은 뒤 - 아들 피앙크 장군이 최고 사제직을 계승.
※ 자신의 근거지인 테베 외에는 - 영향력이 없었음.
② 람세스 11세가 - 자식이 없이 죽음.
⇒ 스멘데스가 - 그의 장례식을 집전함.
ⅰ) 이집트 전통 - 선대 파라오의 장례를 치른 자가 새로운 파라오로 즉위함.
⇒ 스멘데스가 – 왕이 됨(스멘데스 1세)
ⅱ) 신왕국 멸망 - 이집트 제3 중간기의 시작
8. 이집트 제3 중간기(Third Intermediate Period)(BC 1069년 ~ BC 525년)
① 내부 분열과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- 혼한에 휩싸임.
② 테베의 아문 대사제단(Theban High Priests of Amun)(BC 1080~BC 945)
ⅰ) 람세스 11세 말기에 -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.
ⅱ) 상이집트를 지배.
ⅲ) 파라오와 같은 - 권세를 누림.
③ 테베에서 헤리호르가 람세스 11세의 왕위를 찬탈할 무렵 -
※ 북부에서는 - 스멘데스가 타니스( = 소안)에 제21왕조를 열어
이집트가 양분되었다
⑤ 리비아의 통치를 받음 - 하이집트
⑥ 이후 누비아인들의 통치를 받음 - 리비아인들의 통치 이후에는 누비아인들의 통치가 시작됨.
ⅰ) 구스③( = 쿠시) 왕국을 건설한 누비아인들이 - 북부로 진출.
ⅱ) 80년 넘게 - 이집트를 통치.
ⅲ) 누비아인들의 시대가 끝나고 - 26왕조가 등장.
cf) 그러나 독자적인 힘이 아닌 -
※ 앗수르( = 아시리아)의 아슈르바니팔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함.
(1) 테베의 아문( = 아멘) 대사제단(Theban High Priests of Amun) (BC 1080 ~ BC 945)
① 람세스 11세 말기에 -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.
② 상이집트를 지배.
③ 이들은 파라오가 아니었기에 - 왕조에 들지는 못하지만 -
※ 파라오와 같은 - 권세를 누림.
(2) 제 3 중간기 21 왕조 (BC 1069년 ~ BC 945년) - 타니스(Tanis)(= 소안)
※ 리비아나 팔레스티나 출신 왕조라는 설이 있음
① 타니스 정권 -
※ 신왕국 제 20왕조가 몰락하자마자 - 이집트의 권력이
⇒ 테베의 아문 대사제단의 손에 들어감.
※ 이러한 상황은 - BC 10세기 중반까지 계속됨.
② 21왕조 - 테베의 아문 대사제단과 같은 시기에 -
❶ 타니스( = 소안)를 중심으로 - 하이집트 지방을 통치함.
❷ 그러나 상이집트를 지배한 테베의 아문 대사제단보다 - 미약했다.
1) 스멘데스 1세(Smendes)(BC 1077년 ~ BC 1051년)
① 이집트 제 3중간기 제 21왕조의 - 초대 파라오.
② 신왕국 20 왕조 람세스 11세가 - 자식이 없이 죽음.
⇒ 스멘데스가 - 그의 장례식을 집전함.
ⅰ) 이집트 전통 - 선대 파라오의 장례를 치른 자가 - 새로운 파라오로 즉위함.
⇒ 스멘데스가 - 왕이 됨(스멘데스 1세)
ⅱ) 신왕국 멸망 - 이집트 제3 중간기의 시작
③ 이스라엘 - 사울①이 왕이 됨.(BC 1051)
2) 아메넴니수(Amenemnisu)(BC 1051년 ~ BC 1047년)
3) 프수센네스 1세(Psusennes Ⅰ)(BC 1047년 ~ BC 1001년)
① 왕권이 약함 - 하이집트 왕이 전 이집트의 왕으로 지칭했으나 -
※ 사실상 - 테베의 대사제단이 권력을 갖음.
②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- 신권을 가진 테베의 아문 대사제단과
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임.
③ 이스라엘 - 다윗이 왕이 됨(BC 1010년)
4) 아메네모페(Amenemopet)(BC 1001년 ~ BC 992년)
5) 오소르콘(Osorkon = 오소코르 Osochor) (BC 992년 ~ BC 986년)
6) 시아멘(Siamen = 시아문)(BC 967년 ~ BC 943년)
① 영리하고 똑똑한 왕
② 이집트의 옛 명성을 회복하고자 - 서서히 군사력을 강화함.
③ 다윗의 타고난 지도력과 군사력 때문에 - 한동안 침범하지 못하고 기회를 노림.
★참고 - 174. 다윗①~⑥
④ 이스라엘 - 솔로몬이 왕이 됨.
ⅰ) 과거 이집트가 다스렸던 - 팔레스타인과 블레셋 땅을 침략하여 땅을 차지함.(BC 969년경)
ⅱ) 게셀을 침략하여 - 탈취(왕상 9:16)
⇒ 솔로몬과 결혼하는 딸에게 - 게셀을 결혼 예물로 줌
※ 왕상 9:16 -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-
⇒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
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– 죽이고
※ 그 성읍을 -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
ⅲ) 딸을 - 솔로몬과 결혼시킴 - 정치적 정략결혼 (왕상 3:1, 왕상 7:8, 왕상 9:24, 대하 8:11)
★참고 - 548. 솔로몬
※ 왕상 3:1 - 솔로몬이 -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
그의 딸을 맞이하고 -
⇒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
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
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
ⅳ) 솔로몬이 - 그녀를 위해 - 왕궁을 지어줌(왕상 7:8, 왕상 9:24, 대하 8:11)
cf) 이유 - 시아멘( = 시아문)의 딸은 - 다윗 왕궁 함께 살수 없었다.
※ 성전을 짓기 전이라 - 언약궤가 다윗성에 있었다.
※ 대하 8:11 - 솔로몬이 - 바로의 딸을 데리고 -
⇒ 다윗 성에서부터 -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
이르되 -
※ “내 아내가 -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-
※ 이는 -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
거룩함이니라.”
하였더라
⑤ 아들이 없이 죽자 - 아문 대제사장의 아들 프수센네스 2세가 왕이 됨.
7) 프수센네스 2세(Psusennes Ⅱ)(BC 967년 ~ BC 943년)
① 아문 대제사장의 아들
② 아들이 없음
③ 딸이 - 군사령과 시삭( = 세숑크)의 아들 오소르콘(Osorkon)과 결혼.
⇒ 시삭은 - 자기 아들을 왕의 딸과 결혼시켜 - 왕권찬탈의 기회를 노림.
⇒ 결국 시삭은 - 22왕조의 초대 왕이 됨
※ 시삭 1세 = 세숑크 1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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