866. 애굽(Egypt)⑩ - 제 3 중간기 26 왕조 바로 느고(네코) 2세, 호브라
(7) 제 3 중간기 제 26 왕조 (BC 664 ~ BC 525년) - 사이스 -‘앗수르( = 아시리아)의 점령기’
※ 친 앗수르 → 친 그리스 정책으로
① 앗수르( = 아시리아)의 아슈르바니팔( = 앗수르바니팔)은 - 테베( = 노)를 멸망시킴.
cf) 아슈르바니팔( =오스납발) - 산헤립(센나케리브)의 손자
에살핫돈의 아들.(스 4:2)
❶ 대리 왕을 세움
⒈느고 1세( = 네코 1세)
※ 25왕조 마지막 왕 탄타마니 반란 진압 때 - 죽음.
⒉ 프삼티크 1세 - 이집트 사이스의 대리왕으로 세워짐
※ 바로 느고 1세의 아들
⒊ 느고 2세( = 네코 2세) - 이집트 아트리비스의 왕으로 세워짐.
❷ 북이스라엘에 혼혈이주 정책 사용(스 4:10)
※ 스 4:10 - 그 밖에 백성 곧 -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
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
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
② 앗수르( = 아시리아)의 도움으로 - 26왕조는 25왕조가 다스리던 상이집트까지
100년 이상을 안정적으로 통치가 가능했음.
③ 멸망 - 바벨론( = 바빌론 = 바빌로니아)과 바사( = 페르시아)에게 차례 대로.
⇒ 나훔과 스바냐의 예언 성취(나 1:1, 나 2:8~13, 나 3:7~19, 습 2:13~15)
❶ 앗수르 군대는 - 이집트에서 쫒겨 나지만 - 무역은 계속 유지함.
❷ 앗수르 멸망과 함께 - 이집트도 다시 정복됨.
⒈ 바벨론(=바빌론)에게 - 느부갓네살 2세(네부카드네자르 2세) (BC 614년)
★참고 - 147. 느부갓네살 2세①~④
⒉ 바사( = 페르시아)에게 – 고레스 2세
ⅰ) 니느웨( = 니네베)가 - 함락당함(BC 612년)
Ⓐ 앗수르바니팔이 죽은 뒤 - 내분을 틈타 -
⇒ 바벨론(나보폴라살과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 1세)과
메대의 합동 공격으로 -
※ 니느웨가 함락 당함.
★참고 - 155. 니느웨
Ⓑ 니느웨가 함락될 때 - 당시의 왕 신샤르이슈쿤이 불에 타 죽음.
Ⓒ 앗수르 제국은 - 바벨론에게 완전히 정복됨
Ⓓ 그러는 동안 서쪽의 식민지 도시들은 - 서서히 앗수르 제국으로부터 벗어남.
cf) 유다의 요시야의 개혁이 가능했음.
ⅱ) 앗수르는 - 앗수르바니팔 이후 - 점점 쇠퇴해 감.
ⅲ) 앗수르바니팔의 아들 - 아슈르 에텔 일라니와 신샤르 이슈쿤의 - 공동통치
※ 갈그미스 전투시기의 - 힘없는 이름만 왕들.
⇒ 그러나 앗수르는 - 20년 만에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.(BC 609년)
⇒ 이후 제국들에게 차례로 점령됨
※ 앗수르(아시리아) → 바벨론(바빌론) → 바사(페르시아) → 그리스(헬라) → 로마 → 이슬람
1) 느고 1세( = 네코 1세 Necho Ⅰ)(BC 672년 ~ BC 664년)
① 24왕조 테프나크트의 아들
② 대리 왕 - 앗수르 앗슈르바니팔에 의해 이집트의 대리 왕이 됨.
③ 25왕조 마지막 왕 탄타마니의 반란을 진압하다 - 죽음.
2) 프삼티크 1세( = 프사메티코스 1세 Psammetichus Ⅰ)(BC 664년 ~ BC 610년)
※ 앗수르와 동맹 → 그리스와 동맹 → 앗수르를 축출
❶ 친앗수르 정책과 배반 - 앗수르에게 바치던 조공을 - 중단(BC 656년)
❷ 이집트를 통일 - 리디아와 그리스인들의 도움 받음.
⇒ 앗수르로부터 완전히 벗어남.(BC 639년)
❸ 그리스인들의 문화 흡수 및 우대정책
① 느고 1세( = 네코 1세)의 아들
② 제 26왕조의 - 실질적인 1번째 왕.
③ 대리 왕 - 아슈르바니팔( = 앗수르바니팔 = 오스납발)에 의해 - 이집트 사이스(Sais)의 왕이 됨.
④ 친앗수르( = 친아시리아) 정책을 배반
cf) 본래 아버지 바로 느고 1세 때부터 – 앗수르( = 아시리아)와 동맹을 맺은 상태였음.
⇒ BC 656년 - 아들 프삼티크 1세는 앗수르에게 바치던 조공을 중단함.
⑤ 이집트를 통일 - 리디아와 그리스인들의 힘을 빌림
⇒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남.
ⅰ) 재빨리 이집트를 재통합하여 - 26왕조를 세움 - 이집트 왕조
⇒ BC 639년 – 앗수르( = 앗시리아로부터 완전히 벗어남.
ⅱ) 가능했던 이유 - 리디아의 왕 기게스가 이집트를 도움. - 용병을 파병해 줌.
Ⓐ 아슈르바니팔이 죽은 뒤 - 그리스인의 힘을 빌림.
Ⓑ 앗수르가 제 25왕조를 무너뜨린 후에 - 다른 속주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는 사이에 -
※ 이집트 상하 전체를 통일.
⇒ 앗수르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남.
⑥ 그리스인들의 문화 흡수 및 그리스인들 우대정책
ⅰ) 이집트에 - 화폐에 대한 개념이 들어감.
cf) 원래 이집트는 – 물물교환
※ 물물교환 → 화폐 사용으로.
ⅱ) 나우크라티스(Naukratis)가 발달됨
Ⓐ 나우크라티스 -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서쪽에 자리한
그리스인의 상업 거래소(Emporia)
Ⓑ 토착 이집트인들의 - 반갑을 사게 됨.
⇒ 훗날 바사( = 페르시아)의 고레스 2세가 침략했을 때
※ ❶ 자신들의 왕조에 - 등을 돌리고
❷ 고레스 2세( = 키루스 2세)를 - 환영함.
ⅲ) 그리스 용병에 의하여 - 기초가 이루어짐.
ⅳ) 여러 폴리스가 참여하여 - 이집트 왕으로부터 - 토지와 특권을 부여받음.
ⅴ) 각자 신전 들을 건립.
ⅶ) 이집트 무역에 있어서 -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함.
ⅷ) 헬레니즘시대에 알렉산드리아가 무역항으로 등장할 때까지 - 번영함.
3) 느고 2세( = 네코 2세 Necho Ⅱ)(BC 610년 ~ BC 595년)
★참고 - 141. 느고 2세
❶ 프삼티크 1세의 아들
❷ 대리 왕 - 앗수르 아슈르바니팔에 의해 - 아트리비스의 왕이 됨.
❸ 아프리카 일주 탐험대를 보내기 성공함- 2년에 걸쳐 진행됨.
※ 홍해 → 소말리아 → 희망봉 → 베르데곶 → 지브롤터 해협 → 이집트
❹ 지중해-홍해를 잇는 운하 건설을 최초로 시도.(BC 600년 경)
※ 사제들 반대로 중단 - 바사(페르시아)의 다리오②(다리우스 1세)가 완성
❺ 친 앗수르 정책을 폄 -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친앗수르 정책을 추진.
❻ 므깃도 전투 - 앗수르와 바벨론(나보포랏살)의 전투를 위해
갈그미스로 올라 가던 중에 일어남.(BC 608년)
⒈ 애굽과 남유다의 전쟁으로 바뀜.(바로 느고 VS 요시야)
⒉ 남유다 요시야 죽임
❼ 바벨론 느부갓네살 2세가 - 애굽의 느고 2세를 직접 치러 나섬.(왕하 24:7)
⇒ 참패(왕하 24:7, 렘 46:2)
⇒ 애굽의 전 지역이 완전히 바벨론 손에 넘어감.(왕하 24:7)
❽ 시리아와 남유다(팔레스타인)에서 - 철수하게 됨.
❾ 남유다 멸망 시작 - 느부갓네살 2살에 의해 –
⇒ 1차 바벨론 유수(BC 602년) - 여호야김, 다니엘①과 그의 친구들도 끌려감
(단 1:1~5)
2차 바벨론 유수 - 여호야긴, 에스겔과
기스②(모르드개①의 할아버지)도 - 끌려감.(왕하 24:15)
① 애굽의 왕 - 네코 2세( = 느고 2세 Necho Ⅱ)((BC 610년 ~ BC 595년)
② 프삼티크 1세의 아들
③ 대리 왕 - 앗수르 아슈르바니팔( = 앗수르바비팔)에 의해 -
⇒ 아트리비스(Athribis)의 왕이 됨.
④ 아프리카 일주 탐험대를 보냄 - 2년에 걸쳐 진행됨.
ⅰ) 당시 식민지 였던 페니키아 배와 선원들을 보냄.
※ 페니키아 – 두로, 시돈 등이 강력한 해양 도시임
ⅱ) 항해 노선
※ 홍해 → 소말리아 → 희망봉 → 베르데곶 → 지브롤터 해협 → 이집트
⑤ 운하 건설을 최초로 시도 - 지중해에서 ~ 홍해를 이음.(BC 600년 경)
❶ 사제들 반대로 - 중단
❷ 바사( = 페르시아)의 다리오②( = 다리우스 1세)가 - 완성
ⅰ) 건설 시작의 이유 -
※ 이집트 삼각주 유역에서 교역이 늘어났기 때문
앗수르 제국( = 아시리아 제국)이 - 메소포타미아 주도권을 바벨론에게 빼앗겨
위협을 느낌.
ⅱ) 사제들의 반대로 - 중단됨.
※ 이유 - ❶ 이 사업이 완성되면 -
⇒ 가장 이익을 볼 집단은 - 페니키아인들.
cf) 페니키아 = 베니게 = 두로와 시돈 등
❷ 그래서 사제들은 - 이방인들을 위해 이런 사업을 하지 말라는
‘신탁’이 내려졌다고 주장함.
ⅲ)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( = 바사의 다리오②)가 - 이를 완성함.
★참고 - 163. 다리오②
⑥ 친앗수르 정책을 폄 -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- 친앗수르 정책을 추진.
⑦ 므깃도 전투 - 앗수르와 바벨론 나보포랏살과의 전투를 위해
갈그미스로 올라 가던 중에 일어남.(BC 608년)
★참고 - 19. 갈그미스
❶ 애굽과 남유다의 전쟁으로 바뀜.(바로 느고 2세 vs 요시야)
❷ 남유다 요시야 죽임
ⅰ) 므깃도 - 이스라엘 최고의 요새.
⇒ 이스라엘 역사에서 - 가장 많은 전쟁이 치러진 곳.
※ 아마겟돈(헬라어)이라고도 불림.
ⅱ) 이 시기 - 바벨론의 왕 나보폴라살과 앗수르의 관계
⇒ BC 616년 - 바벨론은 앗수르와의 전쟁을 시작함.
⇒ 바벨론의 공격을 받은 앗수르를 돕고자 - 프삼티크 1세는 군대를 보냄.
⇒ BC 614년 - 앗수르는 메대인의 공격을 받고 위험에 처함.
⇒ BC 612년 - 동맹을 체결한 메대-바벨론 연합군은 - 니느웨를 정복.
※ 그럼에도 불구하고 - 앗수르 제국은 - 아직 명맥을 유지함.
ⅲ) 앗수르 제국( = 아시리아 제국)이 - 메소포타미아 주도권을 바벨론에게 빼앗김.
⇒ 느고 2세는 - 위협을 느껴 -
※ 지중해와 홍해에 - 함대를 만들도록 지시.
ⅳ) 바로 느고 2세( = 파라오 네코 2세)의 출정 - 앗수르를 지원하기 위해.(BC 609년)
Ⓐ 바로 느고 2세는 - 공격을 받고 있는 앗수르( = 앗시리아)를 돕기 위해
바벨론 공격을 감행.
Ⓑ 바로 느고의 야망 및 계획
❶ 하란②으로 올라가 - 일단 앗수르 왕을 치고
앗수르의 남은 군대와 이집트 군인이 연합.
❷ 이후 - 바벨론으로부터 니느웨를 되찾고
모든 것을 바벨론이 아닌 이집트가 차지하려 했음.
ⅴ) 남유다 요시야 왕도 - 곧바로 이집트 바로 느고 2세를 저지하기 위해 - 출정
cf) 요시야가 애굽 느고 2세를 저지한 이유 -
❶ 바벨론과 동맹을 맺었었기 때문.
❷ 요시야의 정치적 결단을 필요했음 - 앗수르와 바벨론 사이에서.
※ 니느웨( = 니네베)를 빼앗기고 하란②으로 수도를 옮겨
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앗수르( = 아시리아)와
고대 근동의 핵으로 떠올라 니느웨( = 니네베)까지 차지 한
바벨론(바빌론) 사이에서.
ⅵ) 므깃도에서 - 남유다 요시야에 의해 지연됨.(왕하 23:29)
※ 왕하 23:29 - 요시야 당시에
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-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
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
⇒ 요시야 왕이 - 맞서 나갔더니
⇒ 애굽 왕이 -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-
※ 죽인지라
Ⓐ 므깃도에서 - 충돌(왕하 23:29, 대하 35:22)
Ⓑ 이집트 왕 느고 2세( = 네코 2세)는 - 사신을 보내어
❶ 화친을 - 요청하며
❷ 이 일은 - 하나님의 명령이고
❸ 자신이 싸우려는 대상은 - 요시야 왕이 아님을 분명히 함.
(대하 35:21)
cf) 하나님께서도 - 요시야의 죽음이 평안하다 하셨음(대하 34:28)
※ 그러나 요시야가 -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음.
⇒ 애굽인의 활에 맞아 죽음
※ 느고 2세 - “유다 왕이여!.
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?
내가 오늘 -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
※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- 치려는 것이라.
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- 속히 하라 하셨은즉
⇒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
※ 그대는 -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!.
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.”
하나
Ⓒ 요시야 왕은 - 듣지 않고 변장까지 하면서 - 전쟁터에 남기를 고집함.(대하 35:21~22)
cf) 이유 - 요시야는 앗수르가 무너지는 것을 원했다..
※ 앗수르가 -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기 때문
※ 대하 35:22 - 요시야가 -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
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-
⇒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- 듣지 아니하고
⇒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- 싸울 때에
ⅶ) 므깃도 전투에서 - 남유다를 격파하고 요시야를 죽임.(BC 609년)
(대하 35:20~24, 왕하 23:29)
Ⓐ 요시야 전사 - 요시야가 므깃도(메기도) 전투에서 죽임당함.(대하 35:23)
ⓐ 전쟁터에서 - 이집트의 궁수가 쏜 화살에 - 중상을 입은 요시야는
⇒ 예루살렘에 돌아와 죽음.(대하 35:23)
ⓑ 예레미야 - 슬퍼하며 ‘예레미야 애가’를 지음.(대하 35:25)
Ⓑ 이스라엘 백성들 - 요시야가 죽자
⇒ 여호아하스②를 - 왕으로 세움(왕하 23:30)
※ 여호아하스② - 반애굽주의 자
⑧ 1차 갈그미스 전투 - 바로 느고 2세의 - 니느웨 탈환 실패.(BC 609년)
※ 요시야를 죽이고 유브라데까지 올라갔으나 - 시간과 전력만 허비됨.
⇒ 야망이 한풀 꺾임.
⑨ 남유다에 - 막강한 권력을 행사함.
※ 때 - 느고 2세가 므깃도 전투 후 이집트로 돌아가면서.
ⅰ) 여호아하스②가 - 반애굽정책을 폄
ⅱ)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운 여호아하스②를 - 퇴위시킴.
Ⓐ 여호아하스②를 립나에 가두고 -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함.
⇒ 이집트로 잡혀가 - 죽음(왕하 23:34, 대하 36:4)
※ 왕하 23:34 - 바로 느고가 -
❶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-
⇒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- 왕으로 삼고
❷ 그의 이름을 고쳐 - ‘여호야김’이라 하고
❸ 여호아하스②는 - 애굽으로 잡아갔더니
⇒ 그가 - 거기서 죽으니라
ⓐ 예레미야의 예언(렘 22:10~12)
※ 렘 22:10 - 너희는 - 죽은 자를 위하여 - 울지 말며
그를 위하여 - 애통하지 말고 -
※ 잡혀간 자를 위하여 - 슬피 울라!.
그는 -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
보지 못할 것임이라
※ 렘 22:11a - 여호와께서 -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
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
이곳에서 나간 -
※ 살룸④에 대하여 -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
※ 여호와 - “그가 -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(렘 22:11b)
잡혀 간 곳에서 -
※ 그가 - 거기서 죽으리니
⇒ 이 땅을 - 다시 보지 못하리라.“
(렘 22:12)
ⓑ 에스겔의 예언 성취(겔 19:4)
※ 겔 19:4 - 이방이 듣고 - 함정으로 그를 잡아 -
⇒ 갈고리로 꿰어 끌고 - 애굽 땅으로 간지라
Ⓒ 남유다에 벌금을 내게 함 - 은 100달란트(3,400kg)와
금 1달란트(34kg) (왕하 23:33, 대하 36:3)
ⅲ) 여호야김(엘리야김)을 왕으로 세움 - 여호아하스②의 형임.(왕하 23:29~37, 대하 36:1~36:4)
※ 왕하 23:34 - 바로 느고가 -
❶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-
⇒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- 왕으로 삼고
❷ 그의 이름을 고쳐 - ‘여호야김’이라 하고
❸ 여호아하스②는 - 애굽으로 잡아갔더니
⇒ 그가 - 거기서 죽으니라
Ⓐ ‘엘리야김’ → ‘여호야김’으로 개명시킴(왕하 23:34)
Ⓑ 여호아하스를 이집트으로 끌고 감 - 이집트에서 죽음.(왕하 23:34)
Ⓒ 남유다가 이집트에 조공 바침 - 은과 금(왕하 23:35)
※ 왕하 23:35 - 여호야김이 -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
그가 -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
그에게 그 돈을 주기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
⇒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- 액수를 정하고 -
※ 은금을 징수하였더라
Ⓓ 남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압력이 커짐 - 바벨론이 조공을 요구.
⇒ 여호야김의 입장이 난처.
⇒ 3년간 - 바벨론 느부갓네살 2세를 섬김.
⇒ 애굽의 압력이 더 커짐.
⇒ 다시 바벨론을 배신하고 - 이집트를 섬김.(왕하 24:1)
※ 왕하 24:1 - 여호야김 시대에
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
⇒ 여호야김이 - 3년간 섬기다가
※ 돌아서 - 그를 배반하였더니
⇒ 바벨론이 - 직접 애굽을 침.
⇒ 갈그미스 전투 일어남.
⑩ 2차 갈그미스 전투 - 이집트(느고 2세) vs 바벨론(느부갓네살2세)과의 전투 - 참패 (BC 605년)
⇒ ❶ 느고 2세( = 네코 2세)의 참패(왕하 24:7, 렘 46:2)
❷ 이집트와 남유다 멸망의 - 직접적인 원인이 됨.
ⅰ) 이집트의 전 지역이 - 완전히 바벨론 손에 넘어감.
ⅱ) 바벨론의 승리 -
cf) 근동 지방을 장악 후
⇒ 이집트는 - 다시 일어나지 못함. (왕하 24:7)
※ 이집트의 수십만 군인들이 - 모두 전사.
⇒ 바벨론은 - 애굽을 완전히 정복하고
남유다로 진격.
※ 왕하 24:7 - 애굽 왕이 -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
이는 - 바벨론 왕이 -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
※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- 점령하였음이더라
⑪ 시리아와 남유다(팔레스타인)에서 - 철수하게 됨.
⑫ 느부갓네살 2세와 다시 싸움 - 양측에 큰 손실 입음.(BC 601년)
⑬ 반바빌로니아 세력의 연합을 계속 지원함 -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에 있는.
⑭ 남유다 멸망 시작 - 바벨론 느부갓네살 2살에 의해 - 여호야김 3년 때
❶ 1차 바벨론 유수(포로)(단 1:1~4)(BC 605년)
❷ 때 - 여호야김(엘리야김) 제 3년
느부갓네살 2세( = 네부카드네자르 2세) 원년 때
ⅰ) 느부갓네살 2세가 - 갈그미스 전투에 왔다가 유대에까지 들어와
예루살렘을 정복. (왕하 24:1, 단 1:1)
※ 단 1:1 -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- 3년이 되는 해에 -
※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- 예루살렘에 이르러
성을 에워쌌더니
ⅱ) 성전 기구들을 약탈당함.(단 1:2, 단 5:2)
※ 단 1:2 - 주께서 - 유다 왕 여호야김과
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- 그의 손에 넘기시매
⇒ 그가 - 그것을 가지고
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-
※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
★참고 - 524. 성전①~⑩
ⅲ) 1차 바벨론 유수 -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감.(BC 602년)
❶ 여호야김도 - 쇠사슬로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감.(단 1:2)
❷ 다니엘①과 그의 친구들도 끌려감.(단 1:1~5)
ⅳ) 2차 바벨론 유수 - 여호야긴 때(왕하 24:15)
cf) 에스겔과 기스②(모르드개①의 할아버지)도 - 끌려감.
※ 왕하 24:15 - 그가 -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
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
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-
⇒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- 사로잡아 가고
4) 프삼티크 2세(Psammetichus Ⅱ)(BC 595년 ~ BC 589년)
※ 팔레스티나, 페니키아까지 진출 -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2세에 대항 - 실패
5) 호브라(Hophra = 아프리에스 Apries = 와히브레)(BC 589년 ~ BC 570년)
❶ 호브라와 시드기야①가 - 동맹관계.(겔 17:15)
⇒ 시드기야①가 - 바벨론을 반역하고 친애굽함.(겔 17:15)
⇒ 바벨론 느부갓네살 2세가 - 남유다 공격
⇒ 호브라가 - 시드기야①를 도우려다 - 성공하지 못하고
※ 이집트로 돌아옴.
⇒ 남유다 완전 멸망 -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해 - 3차 바벨론 유수 (BC 587년)
❷ 서쪽의 리비아 공격 - 참패.
⇒ 군대의 반란이 일어나 - 내전이 발생.
❸ 죽임당함 - 내전 중 반란군의 장군이었던 아마시스 2세에게.
① 남유다 시드기야①와 - 동맹관계였다.(겔 17:15)
cf) 시드기야①가 - 바벨론을 반역하고
친애굽함.(겔 17:15)
★참고 - 620. 시드기야
② 시드기야①가 - 애굽 호브라에게 - 지원군을 요청함.(겔 17:15, 렘 44:30)
⇒ 하나님의 진노를 삼.
※ 여호와 - “그가 사절을 - 애굽에 보내 -
⇒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
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- 형통하겠느냐?
이런 일을 행한 자가 - 피하겠느냐?
언약을 배반하고야 - 피하겠느냐?”(겔 17:15)
※ 여호와 - “보라,
내가 - 유다의 시드기야① 왕을
그의 원수 곧 -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
넘긴 것 같이 -
※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-
⇒ 그의 원수들
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 주리라.”(렘 44:30)
③ 호브라가 - 시드기야①를 도우려다 - 성공하지 못하고 - 이집트로 돌아옴.(렘 37:5, 렘 37:11)
ⅰ) 바로의 군대가 - 애굽에서 나오매(렘 37:5a)
ⅱ)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- 그 소문을 듣고 -
⇒ 예루살렘에서 - 떠났더라(렘 37:5b)
※ 렘 37:11 - 갈대아인의 군대가 -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
⇒ 예루살렘에서 - 떠나매
④ 남유다가 -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해 – 남유다 멸망 - 3차 바벨론 포로.(BC587년)
※ 시드기야① 11년 때, 느부갓네살 19년 때
ⅰ) 이집트 호브라 군대가 즉각 퇴각하자 - 다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하고 포위함.
❶ 바벨론은 - 시드기야① 제 9년 10월 10일부터 - 예루살렘을 포위.
(왕하 25:1, 렘 39:1~2, 52:4)
❷ 시드기야① 11년까지 - 약 30개월 동안 - 예루살렘 성을 에워쌈.
(왕하 25:1~2, 대하 36:11~20, 렘 37:7~10, 겔 17:12~21)
Ⓐ 시드기야① 제 9년 10째 달 10일에(왕하 25:1a)
Ⓑ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-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
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
⇒ 그 성에 대하여 - 진을 치고
주위에 토성을 쌓으매(왕하 25:1)
Ⓒ 그 성이 - 시드기야① 왕 제 11년까지 - 포위되었더라(왕하 25:2)
Ⓓ 예루살렘 멸망(BC 586년) - 70년간(왕하 25:1~3, 대하 36:17~21, 렘 39:1~2, 52:4~6)
ⅱ) 화가 난 바벨론 느부갓네살 2세가 -
⇒ 다시 남유다를 치고 - 바벨론 3차 포로로 잡아감.(BC 586년)
(왕하 24:20, 렘 27:12~13, 렘 37:2, 겔 17:15)
ⅲ) 남유다 시드기야①가 -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지 않은 결과임.(왕하 24:20, 렘 27:12~13, 렘 37:2)
※ 예레미야 - “애굽으로 - 가지 말고
※ 70년 동안만 - 바벨로의 포로로 가라!.”
Ⓐ 시드기야①는 - ‘바벨론에게 항복하라’는
예레미야 선지자의 권면을 듣지 않음.(겔 27:12)
※ 예레미야 - “왕과 백성은 -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
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!.
⇒ 그리하면 - 사시리라.”(렘 27:12)
Ⓑ 시드기야①가 - 친애굽-반바벨론 정책을 고집.
(왕하 24:20, 렘 27:12~13, 렘 37:2, 겔 17:15)
⑤ 서쪽의 리비아에 공격을 단행.
⇒ 참패.
⇒ 군대의 반란이 일어나 내전이 발생.
⑥ 죽임 당함 - 아마시스 2세(=아흐모세 2세)에게.
※ 내전 중 - 반란군의 장군이었던 아마시스 2세와의 전투에서 - 전사.
⇒ 아마시스 2세(=아흐모세 2세)가 왕이 됨.
cf) 호브라를 죽이고 - 왕이 됨.
6) 아흐모세 2세( = 아마시스 2세(Amasis Ⅱ) (BC 570년 ~ BC 526년)
① 이집트 내전 중 - 반란군의 장군
② 호브라(아프리에스 = 와히브레)왕을 죽이고 - 왕이 됨.
③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2세의 - 공격을 받음
④ 느부갓네살 2세(= 네부카드네자르 2세)가 - 죽음(BC 562년)
⇒ 에윌므로닥이 - 왕이 됨(BC 560년)
⇒ 바벨론이 - 내분에 휩쌓임
⇒ 이집트가 - 잠시 숨을 돌림.
⑤ 바사( = 페르시아) 등장 - 고레스 2세( = 키루스 2세) - 바벨론 멸망시킴.
★참고 - 47. 고레스 2세
❶ BC 550년 - 아케메네스 바사(페르시아)의 고레스 2세(키루스2세) 대왕이
메디아제국(아스티아게스) 왕을 멸망시킴.
❷ BC 546년 - 리디아(크로이소스 왕) 멸망시킴.
❸ BC 539년 - 바벨론(나보니도스)까지 멸망시킴.
7) 프삼티크 3세(Psammetichus Ⅲ)(BC 526년 ~ BC 525년)
❶ 펠루시움(Pelusium) 전투 - 패함(BC 525년)
※ 프삼티크 3세 vs 바사캄비세스 2세
❷ 맴피스( = 놉②)를 점령당함 - 페르시아로 끌려가 처형됨.
① 펠루시움 전투(BC 525년) - 프삼티크 3세 vs 바사 캄비세스 2세( = 아닥사스다①)와의 전투
⇒ 캄비세스에게 패함.
cf) 캄비세스 2세 = 아닥사스다①
바사 고레스 2세( = 키루스 2세)의 아들.
★참고 - 692. 아닥사스다①
ⅰ) 캄비세스 2세 - 즉위직후부터 - 이집트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음.
Ⓐ 준비 - 그리스인 용병 파네스를 통해 - 이집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,
사모스 섬의 폴리크라테스( = 사모스)을 - 회유하고,
아라비아의 원주민과 연계하고 - 사막에 식수통으로 쓸 토기를 대량으로 매점함.
Ⓑ 아라비아의 부족들의 지원하에 - 시나이 사막을 건너서 -
⇒ 이집트를 침공.
ⅱ) 프삼티크 3세 - 나일강 하구의 펠루시온에서 주둔하며
캄비세스 2세의 군대를 기다림.
ⅲ) 펠루시온에서 - 양측의 군대가 전투를 벌임.
ⅳ) 프삼티크 3세는 - 이집트의 용병들에게 배신 당함.
⇒ 이집트 용병들이 - 그 아들들을 죽이고
캄비세스 군대로 합병함.
② 멤피스( = 놉②)를 - 점령당함 - 페르시아 캄비세스 2세( = 아닥사스다①)에게.
★참고 - 138. 멤피스
ⅰ) 캄비세스 2세는 -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( = 놉②)에 -
※ 항복을 요구하는 사절을 보냄.
ⅱ) 멤피스는 - 사절단을 살해해 - 항복을 거부함.
ⅲ) 캄비세스 군대는 - ❶ 멤피스를 - 점령하고
❷ 파라오 프삼티크 3세를 - 포로로 잡아감.
cf) 이집트 주변국들에게 - 무혈항복을 받는다.
ex) 리뷔에 - 고대인들은 이집트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지역을
리뷔에(Libyē, Λιβύη)라고 불렀다
퀴레네( = 키레네 = 리비아 샤하트)
③ 캄비세스 2세는 -
❶ 죽은 아흐모세의 미라를 - 태워버림.
❷ 이집트 정벌이후 - 누비아의 왕국들과
카르타고의 정벌을 - 계획함.
⇒ 그러나 - 누비아 모래사막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- 철수함.
④ 프삼티크 3세가 - 반란을 계획하다 - 사형당함.
※ 이유 - 바사의 혼란에 빠진 민심을 이용해 - 반란을 계획했기 때문.
ⅰ) 이집트 원정 직후 - 동생인 스메르디스(바르디야)와
누나이자 아내가(근친혼관계) - 죽음
⇒ 이것이 캄비세스( = 아닥사스다①)가 살해했다는 - 소문이 퍼짐.
ⅱ) 귀족들을 - 잔혹하게 숙청하고
종교나 문화를 모욕하여 -
⇒ 여러 사람들의 - 반발을 삼.
ⅲ) 리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소스가 - 캄비세스에게 충언을 했다가 -
⇒ 화난 캄비세스에게 - 죽을 뻔한 사건도 있었음.
ⅳ) 결국 사람들의 불만은 쌓여가 -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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